전국 곳곳에서 대단위 택지 개발이 잇따르다 보니 개발계획이 뜻밖의 난관에 처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문화재 발굴과 부딪힐 때는 당초 계획했던 사업 일정이 크게 지연되거나 아예 택지개발계획이 전면 중단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화재 발굴과 관련한 건설업체들의 리스크 관리는 공백상태다. 심광주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운영팀장은 16일 "문화재 발굴과 주택 공급은 땅이라는 공동 터전 위에서 공생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민간업체들은 부지 매입 전에 사전조사를 실시하는 등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 취소·백지화 속출 수년 전 한 중견 건설업체가 경기 화성에서 주택건설 사업을 추진할 때였다. 사업부지에서 가마와 토기를 굽던 수십개의 삼국시대 가마터가 나왔다. 큰 일은 없을 것이란 주위의 설명에 마음을 놓았던 이 회사는 가마터에서 나온 깨진 토기 한 조각으로 인해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토기 조각에 쓰인 '화산(華山)'이라는 글씨가 문제였다. 화성(華城) 지명의 연원을 설명하는 소중한 단서였던 것.결국 발굴은 한없이 길게 이어져 금융비용을 이기지 못한 이 업체는 두 손을 들었다. 토공이 개발을 추진했던 충북 청주시 운천지구도 비슷한 예다. 1985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황통 10년(皇統十年)… 흥덕사(興德寺)'라는 문구가 새겨진 제사용 청동제 뚜껑이 발견됐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인쇄했던 흥덕사 터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물이었다. 사안이 워낙 중대했던 만큼 주변은 문화재 지역으로 묶였고 사업은 전면 백지화됐다. ◆문화재 주변도 출입금지구역 택지개발지구에 문화재가 나오지 않더라도 사업에 제한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 평택시 청북지구가 대표적인 예다. 토공이 개발 중인 이 택지지구와 인접한 야산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자미산성'이 있었다. 실사 단계에서 문제가 없어 사업에 착수했으나 산성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 상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에서 300m까지는 경관 보호를 위해 건축물 신축이 어렵다. 이에 따라 토공은 전체 개발계획 중 산성 주변 지역에 대한 아파트 신축을 포기,한때 골프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마저 경기도 등의 반대로 취소하고 현재 아파트 단지에 입주할 입주민을 위한 체육공원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남 풍산지구는 문화재 발굴 문제로 분양이 늦어진 것으로 알려져있지만,정작 문제는 고고학의 토층 연구가 주원인이었다. 강의 흐름에 따라 퇴적되는 토층은 고고학에서 연대 가늠의 중요 요소인 '층위'를 파악하는 데 긴요하다. 다행히 풍산지구는 현재 토층 발굴작업이 끝나 내년 1월부터 분양이 시작될 예정이다. ◆금융비용 보조 등 지원책도 필요 지난 1999년 개발 면적이 3만㎡ 이상인 사업의 경우 사전에 문화재 조사를 의무화한 관련 규정이 도입돼 문화재 발굴과 주택 개발 간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들의 사전 리스크 관리가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완근 ㈜신일 사장은 "사업지에서 출토된 유물과 관련해 대학교수와 박물관 관계자 등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화재 발굴사업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게 됐다"며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다만 국가에서도 사업 지연으로 피해를 입는 건설업체를 위해 지연 기간 중 금융비용에 대해서는 지원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