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영 <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 > 청계천 복원 개장 이후 청계천 일대를 찾은 '방문 시민'이 천만명을 돌파했다. 얼마 전에는 그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시민 이벤트도 열렸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을 그토록 열심히 찾게 하는 것일까? 청계천에 무슨 볼거리가 그렇게도 많은가? 어찌 보면 새로 개장된 청계천은 도심 한가운데 조성된 인공하천 조경작품에 불과하다. 서울 복판을 흐르는 한강의 거대한 강폭과 거기에서 서식하는 온갖 생태계의 동식물에 비하면 도랑 수준에 불과한 청계천은 규모로도 그리 거창할 것이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천이 제대로 복원된 것도 아니다. 청계천이 자연하천으로 복원된다는 것은 21세기 현재의 상황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천을 제대로 복원하려면 이곳으로 흘렀던 지천까지 모두 살려야 하는데, 그럴 경우 서울 강북도심의 상당부분을 뒤엎어 내야 한다. 또 도심 하수도로 기능했던 이전의 청계천에는 맑은 물줄기가 아니라 시커먼 오염수가 흘렀었다. 게다가 계절에 따라 범람을 거듭함으로써 청계천은 오랫 동안 한성의 골칫거리였다. 따라서 옛 하천 형태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며, 그 효과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자연 하천으로서의 환경 복원이 아니라면 역사복원도 사실은 맞지 않는 말이다. 장평교 수표교를 비롯한 옛 다리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옛 다리의 장식물과 문양을 빌려다가 새로운 돌 위에 쪼아 새겨놓았다. 이미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서울이 변화하고 생활이 변화한 다음에 옛 다리의 역사적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도 기실 큰 의미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결국 '역사의 무늬'를 21세기 초의 디자인 조형 작품 위에 덧입혀 놓았다. 그뿐 아니라 청계 고가도로를 허물고 서울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교통망을 축소시키면서 복개도로를 들어내는 일은 청계천 일대에 형성된 산업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도 했다. 최근 청계천 일대의 건축물 용적률 기준 변경에 따른 논란은 그것과 관련된다. 서울시는 하천일대만 손을 대고 재개발은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상 대규모 재개발 구상을 마련해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체 이 작은 도랑 청계천, 실은 자연 하천으로 복원된 것도 아니고 역사가 복원된 것도 아닌 옛 청계천 자리에 새로 설치된 길다란 '인공연못'에 왜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조국근대화가 오로지 살길이었던 박정희 시대, 산업입국을 지향하는 주제로 마련된 미술대회에서 선정된 작품들에는 시커먼 연기를 힘차게 뿜어대고 있는 공장의 모습들이 호평을 받았다. 어떤 작품은 연기가 적게 그려져 힘이 없어 보인다고 좋지 않은 평을 받기도 했다. 당시 생존과 산업입국의 상징이었던 이미지들이 이제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위협의 상징이다. 생계를 해결하고 생존을 어느 정도 보장받은 서울 시민들은 도시공간 안에서 '새로운 의미'에 매달린다. 자신을 낳은 현대사에 대한 부정인가? 사람들을 먹여살려온 도심형 산업의 생명줄이었던 청계고가도로는 이제 적잖은 사람들에게 흉물로 인식되는 판국이 됐다. 징검다리를 건너 도랑물을 건널 수 있고, 도랑가 풀벌레를 잡을 수 있는 작은 하천이, 그것이 인공이든 아니든, 옛 추억의 잔상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상징적 이미지로 추구되고 경험된다. 그 도랑 곳곳에서 가끔 문화예술 이벤트도 마련된다. 사람들은 거기 내려가 숨을 쉰다. 거닐어 본다. 어디선가 읽은 도시역사의 노스탤지어를 내 것으로 곱씹어본다. 이제는 제조업이 아닌 소위 첨단 문화 산업지구가 그 주변을 장식할 계획이다. 역사의 한 사이클이 바뀌었다. 청계천을 찾는 이들이 소비하는 이미지는 산업화 시대 도시민들이 굶주려온 그 모든 상징의 총합체이다. 시대적 상징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