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연봉은 올해보다 많지 않게 책정하고 스톡옵션은 아예 주지 말며 보너스는 작년보다 적게 달라.' 얼핏보면 대규모 적자를 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풀죽은 목소리로 하는 말 같다. 그러나 이를 요구한 사람이 몸담고 있는 기업의 올 매출은 1억달러로 작년보다 40%나 증가했다. 이를 반영해 CEO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려는 보상위원회에 보낸 일종의 '탄원서'다. 주인공은 에산 버만(44). 월가에서 리스크관리 및 리스크컨설팅을 해주는 '리스크메트릭스'라는 회사의 CEO다. 이 회사는 지난 98년 JP모건에서 분사됐다. 분사 당시 직원은 25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70명으로 불어났다. 매출액이 늘어난 만큼 순익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만이 급여를 올려주지 말라고 '읍소'한 것은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회사의 장기발전을 위해 훨씬 바람직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버만은 탄원서에서 "특정 회사의 최고 연봉이 최저 연봉의 20배를 넘으면 회사가 불안정한 것으로 판단,그 회사에 대출을 해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한 은행원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며 "실적이 좋다고 CEO의 급여가 다른 직원보다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하면 회사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적었다. 스톡옵션의 경우 "대상자의 범위를 더 넓혀 좀더 많은 직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보너스를 작년보다 적게 받아야 할 이유에 대해선 "내 일은 회사가 지금부터 5년,혹은 10년 동안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고 직원들에게 그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인데 올해는 미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