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여기에서 살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춥고 건조한 기후에 풀 한 포기 자랄 것 같지 않은 메마른 황토산,사방을 둘러봐도 변변한 경작지라곤 보이지 않는 거친 땅.그러나 옛사람들은 이 황토산에 벌집처럼 구멍을 뚫어 집을 짓고 산꼭대기엔 왕궁과 사원까지 세웠다.


아침 햇살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산하대지를 비추자 황토산의 왕궁은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자다(札達)현청 소재지에서 18km쯤 떨어진 자부랑 마을 위쪽의 구게(古格) 왕국 유적지.동틀 무렵의 유적지 모습이 장관이라고 해서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자다를 출발했다.


길은 자다에 올 때처럼 험하다.


울퉁불퉁한데다 급회전이 다반사다.


약 1시간 만에 자부랑 마을을 지난 뒤 말라버린 하천 계곡을 따라 1km쯤 올라가자 어둠 속에서 구게왕국의 유적지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사진으로만 봤던 백묘(白廟)와 홍묘(紅廟),도모전(度母殿),윤회묘,경당,그리고 산꼭대기의 여름궁전(夏宮)과 단성전(壇城殿),민가로 쓰였을 오두막 동굴들….


성호(聖湖)인 마나사로바에서 서북쪽으로 흘러드는 샹취안허(象泉河) 가장자리의 황토산에 자리잡은 구게왕국의 옛터는 1000년 이상의 세월을 넘어 이렇게 역사를 증언한다.


왕조는 사라졌지만 유적과 유물은 그 찬란했던 영화(榮華)의 세월과 무상함을 침묵으로 일러준다.


구게왕국은 9세기 티베트의 토번(吐蕃)왕국이 분열된 뒤 성립된 지방 정권으로 비교적 세력이 강성한 국가였다고 한다.


토번의 마지막 왕 랑다마(郎達瑪)가 죽은 뒤 벌어진 수 차례의 왕위 쟁탈전에서 패한 지더니마(吉德尼瑪)왕자가 아리(阿里) 지역으로 도피해 새로운 왕국을 건설했다.


지더니마는 후에 아리 지역을 세 부분으로 나눠 아들들에게 나눠줬는데,이들 나라가 라다크 왕국과 푸란 왕국,그리고 구게 왕국이다.


구게 왕국은 지더니마의 셋째 아들인 더짜오(德朝)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서장왕신기(西藏王臣記)'에 따르면 구게 왕조는 700여년간 16명의 왕이 통치했으며 강성했을 때는 서쪽으로 캐쉬미르 일대와 지금의 파키스탄 일부까지도 지배했다고 한다.


또한 구게 왕성은 10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끊임없이 증축돼 황토산 전체가 왕궁과 사원,방어시설과 주거지 등이 어우러진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로 탈바꿈했다.


총면적이 72만㎡에 이르는 구게왕국 유적지에는 방 445칸,토굴 879개,보루 58개,비밀통로 4갈래,불탑 28기 등이 남아있다.


왕성이 있는 황토산의 바닥에는 노예와 백성들이 살았던 300여개의 동굴 주거지와 낡은 오두막이 줄지어 있고,산허리에는 작은 사원과 전각,승방 등이 밀집해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왕실 사람들이 거주하던 황토산 꼭대기의 여름궁전과 산 밑바닥에서 추위를 피하던 지하궁전인 동궁(冬宮)이 비밀통로로 연결돼 있다는 점.산성 내부에 인공 암도(暗道·터널)를 상하로 파서 꼭대기까지 연결되도록 설계했고 2km가량의 회전식 취수도(取水道)를 만들어 산꼭대기 왕궁으로 물을 끌어올렸다.


당대 건축가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를 신봉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고 일궜던 화려한 구게 왕국도 무상(無常)의 진리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구게 왕국은 1635년 캐쉬미르에서 온 라다크인들의 집요한 공격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국왕은 성문을 닫고 완강히 저항했으나 라다크인들이 매일 산 아래에서 백성들을 학살하자 결국 투항했다고 한다.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의 격렬했던 싸움과 승부가 갈라진 뒤의 약탈과 살상,그리고 역사 속에 묻혀버린 왕국의 영화….'문화를 존중하고 문명을 드높이자(尊重文化 弘揚文明)'는 표어가 붙어있는 매표소 건물 안쪽 마당에서 수요차 한 잔을 놓고 상념에 잠겨본다.


인간은 원래 이렇게 탐욕스런 존재인가,화려했던 구게왕국도 긴 시간의 흐름에선 한낱 찰나의 영화에 불과했던 것인가.


다음 날 아침 다시 길을 나선다.


목표 지점은 북쪽으로 200km쯤 떨어진 스취안허(獅泉河).자다현 시가지를 20여km쯤 우회해서 샹취안허를 건너자 자그마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에서 시가지의 전경이 사라질 즈음 길을 따라 협곡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사암같은 무른 암석이 풍파에 씻기고 깎여 기둥 모양,버섯 모양,원추형 등의 연속·불연속 조형을 만들어내며 수없이 많은 걸작을 만들어놓았다.


'자다 토림(土林')이다.


중국판 그랜드캐니언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이어지는 협곡만 15km,협곡이 끝나고도 계속되는 만물상의 연속선까지 더하면 40km 가까이 대자연의 걸작들이 이어진다.


자다 토림을 벗어나 오른쪽에 설산을 끼고 한동안 고원 위의 평지를 달리다 계곡을 하나 건너자 곧장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히말라야 산맥과 갠지스 산맥을 넘는 길이다.


지그재그로 난 길을 헉헉대며 올라간 정상의 해발은 5393m.이어서 5000m 이상의 고개를 둘이나 더 넘어 스취안허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저물었다.


다음 날 스취안허호텔에서 새벽밥을 먹고 다음 목표지인 둬마(多瑪)를 향해 출발한다.


길은 스췬안허 외곽의 황량한 사막을 거쳐 쿤룬(昆崙)산맥 사이로 접어든다.


티베트 최서단의 도시인 르투(日土)에서 점심을 먹고 반궁호(班公湖)를 지나 5000m 안팎의 고개를 수차례 오르내리며 둬마에 도착하자 저녁 7시.이미 해는 져서 캄캄한데 숙소라곤 화물차 운전수들이 숙식을 겸하는 식당들뿐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숙소는 둬마에 상주하는 군부대 막사로 결정됐다.


동행한 중국 국제체육여유공사 이원 총경리가 급히 베이징에 연락해 인민군총참모부의 협조를 구한 덕분이다.


찬물에 고양이 세수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깨끗하기로는 군부대 막사가 훨씬 낫다.


내일은 이번 탐험 일정 중 가장 높은 고개인 해발 6700m의 제산다반(界山大坂)을 넘어 신장웨이얼 자치구로 넘어가는 날.차량으로는 가장 높은 길을 달려 기네스 신기록을 수립하는 날이다.


탐험대원 모두 배갈 한 잔과 함께 전의(戰意)를 다졌지만,글쎄 사람의 앞일을 누가 알것인가.


둬마(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