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석유시장의 메커니즘이 달라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량 조절로 가격이 오르내리던 시대가 끝났다. 지금은 만성적인 초과 수요로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1일 이처럼 달라진 원유시장을 분석하면서 고유가를 지속하게 만든 대표적인 5인을 소개했다. 주인공은 알리 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OPEC의 실권자),제이슨 위(중국 중산층 상징),존 브라운 BP 최고경영자(석유 메이저 CEO),매튜 시몬스 석유투자가,앤드루 런드퀴스트(석유정책담당자) 등이다.



◆알리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OPEC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실권자로 통한다.


아시아 외환위기로 급격한 유가 하락을 경험한 나이미 장관은 새 유전 개발을 통한 공급 확대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공급 조절로 국제유가를 안정시키고자 했다.


그는 '미국 중서부 상업재고'라는 데이터를 중시했다.


그러나 2004년 2월 회의 때 사용한 이 데이터가 잘못돼 9% 감산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당시 데이터는 공급 과잉을 예고했다. 실제론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다. OPEC의 '짜르'라는 나이미의 판단 잘못으로 유가 급등을 막지 못한 것이다. 나이미는 최근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새 유전개발에 나섰으나 "(시장분위기를 바꾸기엔)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제이슨 위(중국 중산층)=중국 베이징에 사는 회계사 제이슨 위(38)는 출근용 자전거를 버리고 3만3000달러를 대출받아 폭스바겐 파사트를 샀다.


그의 연봉은 차값의 60%에 불과한 2만달러. 제이슨 위처럼 자동차를 사들이는 중산층의 구매력은 거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이 급증하면서 전례 없는 수요증대를 가져왔다.


최근 4년간 전 세계 원유소비 증가분의 40%가 중국에서 나왔을 정도다.


중국 석유소비량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뛰어올랐다.


중국 내 자동차 수는 2700여만대로 늘어났으며 2010년에는 50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OPEC이 웬만큼 공급을 늘려도 유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존 브라운 영국 BP 최고경영자=존 브라운은 1996년 합병으로 회사 덩치를 키우는 데 승부수를 걸기로 마음을 정했다.


2년 뒤 아모코와 합병하고 애틀랜틱리치필드도 인수했다.


주주들도 반겼다. 그후 인수·합병은 석유업계의 '유행'이 됐다.


엑슨과 모빌,셰브론과 텍사코가 각각 합쳤고 프랑스의 토탈이 유럽의 경쟁업체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존 브라운이 촉발시킨 합병붐 속에서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 유전 탐사를 위한 투자가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컨설팅회사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서구 석유업계가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고갈되는 유전을 대체할 새 유전 발굴에 매년 300억달러씩 투자해야 하는데 실제론 거의 투자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연 공급능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매튜 시몬스 석유투자가=베테랑 원유선물 투자자인 시몬스는 2003년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을 직접 방문하고는 고민에 휩싸였다.


사우디 유전이 금세 고갈될 수 있고 생산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사우디 석유:현실인가 신기루인가?'란 주제로 책을 쓰고 유전 고갈을 예측하는 강연을 하고 다녔다.


일부 석유회사 경영자들과 엔지니어들은 그의 주장이 잘못됐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몬스의 견해를 믿는 사람이 더 많아 결국 유가는 대세 상승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석유시장에선 시몬스 같은 석유투자자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선물시장에 보수적 투자기관인 연금펀드까지 들어와 있다.


◆앤드루 런드퀴스트 미국 전 석유정책 담당자 =2001년 딕 체니 미국 부통령에 의해 유전개발 정책 입안을 위한 태스크포스에 합류했다.


그는 알래스카 유전개발을 입안했지만 곧바로 환경보호주의자와 민주당의 반발에 부딪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2002년 사임한 뒤 석유업계 로비스트로 일하고 있다. 런드퀴스트 같은 영향력 있는 정책담당자의 말이 먹혔더라면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