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 딜로이트 투쉬 파트너 > 12월이 오면 성탄절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거리를 장식하고 캐럴이 울려퍼진다. 2000년 전 예수께서 세상을 구원하러 베들레헴 땅을 택해 오신 역사적 배경은 세금이다. 성서에는 예수의 탄생에 대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본 고장을 찾아 길을 떠났다. 요셉도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을 떠나 유다 지방의 베들레헴으로 갔다. 베들레헴에서 마리아는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 방이 없어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라고 쓰여 있다. 세금제도 정비를 위한 황제 포고령 때문에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됐다는 이야기다. 로마제국 중흥의 초석을 닦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넓고 얕게 세금을 걷는 것'이 공명정대한 세제라고 생각했고,이는 후대 황제에게 계승되면서 번영의 토대가 됐다. 세금으로는 노예해방세 5%,상속세 5%,소비세 1%,속주세 10% 등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무려 200년이 넘도록 일정한 세율을 유지한 것이다. 이는 10분의 1세,20분의 1세처럼 세율이 아예 세금의 명칭으로 통용됐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생각한 세제의 기본개념은 '납세자가 우선이다. 국가는 세입이 허용하는 범위의 것에만 손을 댄다'였다. 이는 로마제국 후기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로 오면 '국가가 우선이다. 국가에 필요한 경비가 세금으로 납세자에게 부과된다'로 바뀌었다. 납세자 능력보다 국가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세제개념의 변화는 자연히 재정팽창과 재정부실로 연결됐고 로마제국 몰락은 가속화됐다. 로마 말기에 가면 세무공무원들이 세금을 걷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이는 무거운 세금부담으로 사람들이 모두 도망가 마을 전체가 비어버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2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납세자를 우선하는 아우구스투스의 관점은 살아있는 교훈이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1인당 세금부담이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증세론과 감세론이 정치권의 주요 쟁점으로까지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을 보면 '정의는 멀고 이익은 가깝다'는 점을 실감한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정부기능을 과신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정부기능 확대가 재정팽창과 세금부담 증가의 악순환으로 연결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정부는 예외적인 경우에 제한적으로 시장개입을 해야 하는 본분을 잊고 시장실패라는 전가의 보도를 내세워 온갖 사안에 관여하다 보니 돈 쓸 곳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세금이란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게 마련인데,과중한 조세부담은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빼앗고,시장경제에 기반한 국가의 역동성만 감퇴시킬 뿐이다. 무거운 세금보다 가벼운 세금이 결국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는 대표적 사례는 1850년대 영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업성장에 방해되는 세금철폐를 추진했던 글래드스턴은 관세와 소비세의 대폭 축소를 단행했는데,10여년 후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재정흑자를 경험한다. 그는 소득세와 차(茶) 세금을 추가 삭감했는데 세금수입은 계속 증가했다. 세금 인하는 가격 인하를 유발해 거래량을 늘리고 밀수를 줄이며,납세자의 탈세와 관리의 부패를 줄여 결국 세금수입의 증대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을 '세금수입의 자생력'이라고 불렀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이 확립했던 '넓고 얕게 걷는 세제',19세기 글래드스턴의 세금정책과 '세금 폭탄'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비교해 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과연 진보와 발전이란 무엇이며,국가경영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