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부터 공장 천장에서 톡톡하는 소리가 자꾸 들렸어요.느낌이 이상해 우선 직원들을 대피시켰지요.대피 후 얼마 안 돼 지붕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호남지역 최대 지방산업단지인 광주 하남공단 내 의료기 제조업체 세화의료기의 생산과 김선옥씨는 지난 21일 공장이 붕괴되던 순간을 회상하며 아찔해했다. 이 회사는 광주지역의 기록적인 폭설로 공장 3개 동 중 80평짜리 2개 동이 잇따라 무너지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선 우선 무너져 내린 지붕을 철거해야 하지만 눈 때문에 작업차량이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직원들은 나머지 1개 동의 추가 붕괴 위험 탓에 이날 하루 동안 하릴없이 무너진 공장을 지켜만 봐야 했다. 오후부터 다시 눈발이 굵어지면서 직원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22일 폭설로 멈춰선 하남공단을 찾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눈과의 한판 전쟁이었다. 호남고속도로 비아나들목에서 빠져나오자 거북이 걸음을 하는 차량들로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도로에 주차된 일부 트레일러들은 눈에 파묻힌 채 방치돼 있었다. 하남도로 1~10번 도로변은 일부 출근한 직원들만 오갈 뿐 인적이 끊겨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공장은 가동을 멈춘 채 일부 출근한 직원들이 제설 작업을 벌이는 곳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하남공단이 멈춰선 것은 지난 84년 공단 조성 이후 2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자재 반입과 제품 반출이 막힌 데다 직원들의 출근길이 묶여 이날 휴무한 곳은 전체 878개 입주 업체 가운데 90%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남공단 내 최대 업체인 삼성광주전자를 비롯해 에어컨 생산업체인 캐리어와 전자부품업체인 알프스전자 등은 21일 오후 3시부터 조업을 중단한 데 이어 22일 하루 동안 공장문을 닫았다. 폐자원 압축 업체인 덕암자원은 폭설과 한파에 기계가 얼어붙어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날 오전 직원들과 함께 눈을 치우다 사무실 난롯가에 둘러앉은 심형식 덕암자원 사장은 "공장 설립 10년 만에 눈 때문에 휴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눈까지 더 내린다니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광주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알프스 등 23일 정상조업할 방침이지만 눈이 계속 내릴 경우 오후 3시까지 단축조업하는 것도 고려중이다. 이날 공단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하루 종일 입주 업체들의 공장 붕괴 신고전화를 받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날 오후 3시 현재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광일기공의 조립공장 150평이 폭삭 주저앉고 김치냉장고 생산업체 현모하이텍의 170평짜리 공장 지붕이 무너지는 등 모두 13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됐다. 이들 피해 업체를 더욱 애타게 하는 것은 복구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번 폭설에 붕괴사고를 당한 창호제작 업체인 평화공업은 복구를 하지 못해 속만 끓이고 있다. 복구를 하려면 구청의 재건축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처리 기간이 최소 15일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이 회사 최병하 공장장은 "제때 손을 쓰지 못해 공장에 쌓아둔 자재가 뒤틀리고 습기가 차 못 쓰게 되고 있다"며 "피해 복구 지원은 바랄 수도 없지만 피해라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속한 행정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공단업체들의 휴무로 식당에도 한파가 불고 있다. 8번 도로가의 금호가든 이연화 대표는 "평소 점심시간이면 50~100명가량의 손님이 찾았으나 오늘은 단 2명이 들른 것이 고작"이었다고 전했다. 광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