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순화동에 있는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디자인그룹 사무실.
애니콜 휴대폰의 디자인 산실인 이곳은 삼성전자 내에서도 가장 독특한 곳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곳곳에 널려 있는 알룩달룩한 휴대폰 케이스가 눈에 들어온다.
칸막이 사이에는 '삼순이 저금통'과 '헬로키티' 캐릭터 같은 디자인 아이템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모토로라의 슬림폰 '레이저'를 따돌린 'V740'의 디자인도 이곳에서 나왔다.
'V740'에 이어 다양한 후속 슬림폰 디자인을 쏟아낸 이창수 수석(44)과 현상민 책임(35).
두 사람은 난장판 같은 '작업실'로 기자를 안내하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전 덴마크의 명품 오디오 업체 뱅앤올룹슨과 함께 휴대폰을 디자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이 굳어진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에서는 디자인을 할 때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거든요.
그런데 소수의 특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만드는 뱅앤올룹슨 디자이너들은 생각의 출발부터 다르더군요."
휴대폰 디자인에 관한 한 '국내 최고'를 자부하는 이 수석과 현 책임은 자기반성부터 들려줬다.
모든 것을 디자인 위주로 생각하고 휴대폰에는 사용할 수 없는 소재까지 몇 달 동안 검토하는 뱅앤올룹슨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들은 휴대폰 디자인에 관한 한 '괴짜'란 말을 듣는 프로들이다.
두 디자이너가 들려주는 직장생활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게 없다.
오전 8시까지 출근해 디자인 작업을 하다 해가 떨어지면 퇴근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대부분 작업이 팀 단위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두 사람이 담당하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큰 프로젝트는 5,6명이 팀을 구성해 추진한다.
팀 작업은 아이디어 공유 단계부터 시작된다.
컬러 작업은 컬러팀과 협의하고 양산 직전에는 생산 부서의 조언을 듣는다.
디자인 스케치에서 완성까지는 두 달쯤 걸린다.
급할 때는 밤샘을 해 1주일 만에 끝내기도 한다.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디자인을 끝내고 생산으로 넘어가기 일주일 전까지 관련 부서와 싸우고 토론하고 수정하기를 끝없이 거듭한다.
이 수석은 "휴대폰 디자인은 단기간에 마쳐야 하다 보니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경쟁사들과의 속도 싸움도 장난이 아니다.
현 책임은 "스윙폰의 경우 의장등록이 경쟁사에 한 달 뒤졌다"고 털어놨다.
슬림폰 디자인을 맡고 있는 두 사람은 지난해 경쟁사인 모토로라에 선수를 빼앗겼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다고 했다.
2000년부터 슬림을 테마로 다각도로 제품 개발을 검토하던 중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출시에서 뒤졌지만 무작정 서두를 수는 없었습니다.
슬림폰은 약하고 부러지기 쉬운데 이런 점은 삼성 제품 이미지와는 상충되죠.
내구성을 강화하면서 신뢰감을 주기 위해 디자인에서 날카로운 측면을 없앴고 신뢰성을 주는 금속 소재를 채택했죠."
이들은 최근 삼성 슬림폰이 국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슬림폰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느냐"는 질문에는 "가볍게 날지만 품위와 깊이가 있는 학과 같은 새에서 힌트를 얻었다" "선비의 기상과 순수성이 한국 디자인의 장점"이라는 선문답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휴대폰 디자이너의 자질은 무엇일까.
한때 화가를 꿈꿨다는 이 수석은 "디자이너는 보편타당해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자신이 쓰는 게 아니라 남들이 쓰는 물건을 디자인하기 때문에 예술적 감성 못지 않게 보편타당성을 고심해야 한다는 것.
현 책임은 "휴대폰 디자이너는 예술가와 엔지니어,제조자 사이의 중간자로 예술이나 문화,마케팅 등 인간의 감성과 관련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들려줬다.
이 수석과 현 책임은 "산업 디자인은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학창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협동작업을 많이 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글=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