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고용허가제 500일] (上) 필리피노의 '코리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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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8월17일 도입된 고용허가제가 오는 30일로 시행 500일째를 맞는다.
고용허가제는 불법체류 부작용이 큰 산업연수생제를 대체하기 위해 인력 송출 국가와 사용국가(한국)가 직접 해외근로자의 채용을 관리하도록 하는 제도.정부는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를 내년까지 병행 시행한 뒤 2007년부터는 고용허가제로 단일화할 방침이다.
고용허가제를 이용해 본 사업장은 산업연수생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의 이탈률이 낮아졌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부에선 내국인과 같은 급여 수준은 감당하기 힘들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현지 교육 및 국내 연수 실태,개선 과제 등을 짚어본다.
"안녕하십니까,어서오세요."
지난 20일 오전 11시 필리핀 마닐라시 외곽에 있는 TESDA(Technical Education and Skills Development Authority:기술교육기능개발국).우리나라로 치면 기능대학에 해당하는 이곳은 필리핀 POEA(Philippine Overseas Employment Administration:해외취업청)로부터 한국어 교육을 위탁받아 현지인을 가르치고 있다.
기초 과정을 배우고 있던 169기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 40명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이들은 90시간 동안 한국어와 한국 문화 수업을 이수해야만 한국행 비자 신청서를 낼 수 있다.
교실을 안내한 민경일 산업인력관리공단 외국인 고용지원국 부장은 "한국 사회에선 상하 인간관계가 명확하다고 교육했더니 (저런) 인사 습관이 몸에 뱄다"고 설명했다.
양손을 아랫배 위로 포갠 채 허리를 거의 90도로 굽히고 있던 학생들은 계속 진행하라는 마리아 테스다 센터장의 사인이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수업에 몰입했다.
테스다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적어도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택됐음을 의미한다.
이번엔 간단한 숫자 읽기."이만이천사백일입니다.
천구백팔십일년입니다."
부산의 한 공단에서 5년간 일한 한국통 교사 조엘(29)이 칠판에 적힌 숫자를 하나씩 지목하자 학생인 머날(28)이 손을 들고 일어나 막힘 없이 숫자를 읽었다.
머날은 파리의 연인,대장금 등 최근 폭발적 인기를 모은 한국 드라마 비디오와 사설학원을 통해 이미 한국어를 익힌 덕분인지 발음이 좋았다.
같은 시간,옆반에선 커닝 방지를 위해 책상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놓고 한국어 기말시험이 한창 치러지고 있다.
바른말 찾기 항목에선 '망치-망추,회장실과 화장실'을 구분하는 문제가 출제됐다.
60% 이상 맞히지 못한다면 3시간 이상 끙끙대고 풀어야 할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곳에 입소한 19개 기수 학생 600명 중 결석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번 결석하면 재수강 명령이 떨어진다.
그는 "필리핀 근로자가 취업한 200개 국가 중 한국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다"며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신청비용이 브로커 비용의 10분의 1까지 줄어들고,월급은 어느 나라보다 후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필리핀에서 한류의 또 다른 축이 된 것이 한국어능력검정시험이다. 한국 정부가 고용허가제 실시 1년 만인 지난 8월17일부터 한국행 필리핀 근로자들의 한국어 능력 검정시험 응시를 의무화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님파 POEA 해외취업담당 국장은 "한국어 응시 신청자가 너무 많아 빈곤도와 학력,경험,나이 등 4가지 요소를 점수화해 응시 자격을 부여했다"며 "한국행을 원하는 구직 대기자 20만명 가운데 10%에게만 응시 기회가 돌아갔다"고 말했다.
민 부장은 "막연한 환상을 깨기 위해 고용주의 폭행이나 안전사고 등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그대로 얘기한다"며 "불법체류나 무단 이탈 등 문제를 일으키면 결국 후배들과 필리핀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고 밝혔다.
마닐라시티(필리핀)=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