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잔치 벌일 분위기 아니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이 올 연말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액수를 대폭 줄이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실적 부진에 있다. 기업들은 올해 △사상 유례없는 고유가 행진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 원자재 가격 △수익성을 급격히 악화시킨 원·달러 환율 급락세 등으로 어느 때보다 고전했다. 유가 환율 금리 등 내년 경영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금 지출을 최대한 줄여 미래에 대비하려는 포석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의 연말 성과급 축소 분위기는 실적 부진에 외풍까치 겹친 삼성에서 두드러진다. 지난해 계열사별로 최고 700%(기본급 대비)의 특별 상여금을 나눠줬던 삼성은 올해 대규모 '보너스 파티'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실적이 지난해에 못 미치는 데다 삼성공화국론 제기 등 그룹을 둘러싼 여론도 악화됐기 때문에 대규모 특별 보너스를 주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그룹 내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12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올해는 8조원 안팎으로 이익이 급감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LG전자도 비슷한 처지.LG전자는 올 연초 28조원의 매출 목표를 정했지만 실제론 24조원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려 기본급의 300%씩을 성과급으로 지급했지만 올해는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항공·해운사는 고유가와 조종사 파업에 발목이 잡혔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기본급의 300%씩을 성과급으로 지급했지만 올해는 격려금 명목으로 50%만 주기로 했다. 아시아나는 "올해 적자만 벗어나면 최선"이라는 분위기 때문에 성과급을 거론할 형편이 아니다. 한진해운도 성과급을 지난해의 150%에서 올해 100%로 삭감키로 했다. 설비증설 등 투자를 위해 성과급을 줄여 '실탄'을 아끼는 기업도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내년 1월 중 기본급의 200% 정도를 성과급으로 나눠줄 예정이지만 이는 작년(500%)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 회사 우의제 사장은 최근 "지금은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에 더 나설 때"라면서 "올해 배당을 없애고 성과급을 줄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성과급을 줄이고 긴축경영에 나서는 것은 실적부진 외에 내년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내부 유보율을 높이고 자금을 확보해 둬야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진 결과"라고 풀이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