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했다. 청동기 연구가 전공으로 고려대 대학원에서 '한국식 동검문화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청동기 문화','선사 유물과 유적' 등의 저서를 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시작으로 박물관에 발을 들여놓은 뒤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국립광주박물관 관장,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과 학예연구실장을 지냈다. 타고난 학자이자 박물관 사람인 셈이다. 말도 행동도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맡은 일은 무엇이든 사심 없이 꼼꼼하고 소신있게 처리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행정직보다 연구직에 주로 몸 담았던 그가 새 건물 건립이라는 대역사를 앞두고 실시된 공모를 거쳐 차관급인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것도 이 같은 성품과 박물관 업무 및 직원들의 사정에 정통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는 후문이다. 사학자이자 문교부장관을 지낸 이병도(李丙燾)씨가 할아버지,서울대 농대 명예교수인 이춘녕(李春寧)씨가 아버지,서울대 공대 교수인 이장무(李長茂)씨가 형님이다. 호는 할아버지 두계(斗溪)의 계(溪)에 뫼 산(山)자를 붙인 계산(溪山).고고학계의 '건백지교(健白之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대학 동기인 이백규(李白圭) 경북대 교수 겸 한국고고학회장과 가깝게 지낸다. 청동기 연구는 박물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개최됐던 선사시대전에 석기와 철기만 있고 청동기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데 영향을 받아 시작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역사를 새로 쓰는 재미를 갖게 됐다는 고백이다. 또 유물은 하나같이 소중하지만 청동기 유물 가운데 종교 의식에 사용됐던 '청동의기'에 유독 애착이 간다고 얘기한다. 원시 종교와 북방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인 데다 독특한 제작기법을 지금도 밝혀낼 수 없어 궁금증을 더한다는 것이다. 문화계 인사 가운데 존경하는 사람을 묻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를 꼽으며 이유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으면서 남이 개척하지 않은 분야에 평생 매진하는 건 실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만큼 솔직하고 세파에 물들지 않은 만년 청년 같은 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