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4만여개 한국 기업의 노무(勞務)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가 한국식 퇴직금과 비슷한 보상금을 도입하고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을 뼈대로 한 노동계약법을 새로 만들고 있어 노무 관리가 부실한 일부 한국 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 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상무위원회는 지난 24일부터 오는 29일까지 19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노동계약법 초안을 심의하고 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이 법안은 두 차례 정도 심의를 더 거친 뒤 내년 중 시행될 전망이다. 주중대사관 이태희 노무관은 "새 법이 시행되면 기업들로서는 근로자 해고가 어려워질 뿐 아니라 인건비 부담도 더욱 커지게 된다"며 "중국 정부가 근로자 보호뿐 아니라 실업문제 해소 차원에서 노동 법규를 부쩍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새 법 초안은 근로계약 기간을 3개월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턴 기간은 일반직 1개월,기능직은 2개월을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 산업은행 선양 사무소의 김명식 소장은 "한국 기업들은 인턴을 3~4개월 이상 쓰는 경우가 많았다"며 노동의 유연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이 노동 계약을 해지,근로자를 해고할 때는 1년 근속 기간당 1개월치 급여를 보상금으로 주도록 했다. 장기 계약을 유도하기 위해 5년마다 보상금의 10%를 감면해 주겠다는 단서도 달았다. 그러나 중국 우순 시에서 전력 설비를 제작하는 김도연 신성기전 중국법인 대표는 "근로자를 위해 기업이 내야 하는 양로 의료 등 4대 보험료 납부를 최근 들어 엄격히 적용하기 시작한 마당에 새 법까지 시행되면 사실상의 퇴직금까지 추가 부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초안은 문서로 노동 계약을 맺지 않은 근로자도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산재로 부상을 당하거나 병을 얻어 노동능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실한 근로자 △상기 근로자 중 치료기간 내에 있는 사람 △임신 출산 수유 기간 중인 여성 근로자 △근로자측 협상 대표 △기타 법률 또는 행정법규에서 정하는 경우 등 기업 임의로 해고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유형을 명시하기도 했다. 고의로 임금 체불시엔 체임의 50~100%를 배상하도록 했다. 또 기업은 강압적으로 노동을 강요할 수 없으며 그럴 경우 근로자는 회사에 통보하지 않고 스스로 그만둘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선양에서는 한국의 한 봉제업체 한국인 주재원이 몽둥이를 들고 직원들을 훈계하는 사진이 현지 언론에 실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노동계약법 외에 근로자 보호 법규가 속속 마련되고 있다. 지난 10월 전인대를 통과한 회사법을 통해 감사위원회에 근로자 대표를 3분의 1 이상 두도록 한 규정을 신설한 것이나 베이징 시가 11월부터 시행 중인 새 '단체협약 조례'에서 근로자들이 협상을 요구하면 기업이 반드시 응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외국 기업에 공회(노조)를 설립하라는 요구도 최근 1년여 전부터 중국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중국 근로자들의 권익 의식도 높아져 노동 분쟁이 1992년 8만2000여건에서 지난해에는 26만건으로 급증했다. 주중대사관과 삼성 LG 포스코 현대차 등 중국 진출 한국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로 구성된 노무관리연구회가 최근 '노무관리 사례집'을 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