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교수신문은 최근 올해를 상징하는 한자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선정했다. 이 단어는 주역의 64괘 중 38번째 괘인 화택규(火澤目癸)를 풀어 쓴 말로 위에는 불이 있고 아래에는 연못, 곧 물이 있는 형국을 의미한다. 불은 위로 치솟는 경향이 있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불이 혼자 위를 향해 치솟고 물은 아래쪽에 있으니 불의 에너지는 아깝게 낭비되고 불과 물은 전혀 화합하지 못한 채 따로 놀면서 오히려 불의 아래쪽에서 찬 기운을 보내 불의 기운에 상처를 주게 된다. 주역의 괘에서 화택규와 반대되는 것은 49번째 괘인 택화혁(澤火革)이다.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으면 불이 물을 끓게 만들고 그 결과 혁,즉 변화와 개혁이 유도된다. 화택규의 반대가 택화혁으로서 개혁에서의 혁이라는 한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개혁의 원리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기 힘들 정도이다. 비록 불과 물이 상극이지만 불이 자신을 낮춰 물의 아래에서 에너지를 보낸다면 물은 서서히 끓다가 수증기로 변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유도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이 물을 끓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물보다 위에 가서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겠다는 듯이 치솟게 되면 결코 개혁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2005년이 가고 있고 참여정부도 출범한 지 이제 3년이 다 돼가고 있다. 개혁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기간 동안,그리고 2005년에도 예외 없이,수많은 개혁의 화두가 신문의 머리글자를 장식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러한 화두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 새로운 변화를 유도했는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개혁은 집권세력의 전유물이 되고 일종의 도그마가 돼버렸다. 상당한 문제점이 내포된 정책이나 화두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서 합리화되고 이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인 세력을 압박하는 도구가 됐다. 개혁은 이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할 수단인데도 개혁자체가 목적이요 지고지선의 명제가 돼버린 것이다. 최근 사학법 논란만 해도 그렇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개방형이사제 도입안이 기습적으로 통과돼버렸다. 물을 끓이려는 노력은 없이 모든 것을 태우겠다는 듯 활활 위로 타오르는 불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처럼 독선적인 태도로는 결코 개혁의 필수요소인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다. 문제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결여된 채 서둘러 진행되고 도입된 개혁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체가 또 다른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개혁의 진정성과 영속성을 담보하고자 한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진단이 부실한 채 섣부른 개혁 처방이 남발되는 경우,혹은 진단은 괜찮은데 처방이 영 아닌 경우를 배제하고,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통해 진정한 개혁을 이룩하려면 국정의 기본방향 자체를 바꿔야 한다. 2005년에 경제는 여전히 부진하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부분에서 다양한 갈등이 불거졌다. 사학법이 그렇고 강정구 교수 파문에다 연말에 터진 황우석 교수 사태까지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일은 없고 답답함을 더해주는 일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고령화 양극화 재정건전성악화 연금부실화 등 시급히 손을 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한데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또 한 해를 보내게 된 것 또한 답답함을 더해주고 있다. 2006년에 거는 기대도 다를 게 없다. 불의 에너지가 물을 끓이는데 쓰여져서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상당부분 해결되고 한 해를 대표하는 한자성어가 택화혁의 의미를 포함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