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 중국 정부가 외국 지도자를 맞이하는 영빈관인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이 주최한 창립 21주년 기념 글로벌 브랜드 전략 포럼이 열렸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장소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댜오위타이는 기업들이 돈만 내면 장소를 빌려 행사를 열 수 있는 곳이지만 이날 포럼에 참석한 인사의 면면은 하이얼의 위상을 실감케 하기에 충분했다. 리자오싱 외교부장(장관)을 비롯 과학기술부 신식산업부(정통부) 상무부 부부장(차관)등 중국 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서다. 중국에서 가전 사업을 하는 한국 대기업 관계자는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에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 게 상례지만 하이얼한테는 그런 횡포를 부린다는 건 생각도 못한다"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이 밀고 있는 간판기업이라는 게 그 이유다. 중국에서 4년 연속 가장 가치있는 브랜드로 선정된 하이얼은 중국 지도부가 누차 강조하는 브랜드제고 기술혁신 글로벌화의 선두기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하이얼이 올해 하루 1.8개꼴로 신제품을 개발했고,2.8건의 지재권을 신청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날 포럼에서 저명한 경제학자인 후안강 칭화대 국정연구센터 주임도 '개혁개방 시대 민족영웅''글로벌경쟁시대 중국의 걸출한 대표'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이얼 포럼은 중국의 민관이 손잡고 '세계의 공장'을 너머 제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달 초 보시라이 상무부장(장관)은 베이징의 한 포럼에서 "중국은 제조 대국이지만 브랜드 소국"이라면서 새해에는 독자 브랜드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6대 지원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에는 기업브랜드 제고를 위한 7억위안(약 875억원) 지원책도 포함돼 있다. 그는 또 "개혁개방 이후 20년간 '대국'으로 가는 길을 걸어왔다면 향후 20년은 '강국'으로 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중국은 이미 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국가 통계국이 최근 수정발표한 지난해 GDP 규모는 15조9878억위안(약 1998조4750억원)으로 지난 2월 발표 때보다 16.8% 불어났다. 덕분에 세계 경제규모 순위가 이탈리아를 제치고 6위에 올랐다. 지난해 중국의 정보통신(IT)제품 수출이 미국을 처음으로 제쳤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보고서도 대국이 된 중국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에 안주하지 않는다. 중국 IT 수출의 90% 이상은 중국내 외국기업이 이룬 것이라며 자국 기업들에 독자브랜드와 기술혁신을 독려하고있다. 중국 언론에 불고 있는 브랜드와 기술혁신 시리즈 경쟁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인 셈이다. 문제는 중국이 지향하는 길이 바로 우리의 영역이란 점이다. 보 부장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군 비결은 삼성 현대 LG SK 포스코 등과 같은 글로벌브랜드를 키워낸 데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삼성을 능가하는 하이얼을 만들기 위해 온갖 지원을 다하는 지금,우리 기업은 오히려 반기업정서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이 '강국'의 반열에 올라설 때 우리의 현주소가 걱정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오광진 베이징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