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코리아를 스스로 무너뜨리기로 작정을 한 것인가. 방송위원회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통신사업자들의 인터넷망TV(IPTV) 진출에 제동을 걸자 정보통신부는 케이블TV(CATV) 사업자들의 인터넷전화(VoIP) 진출 허가를 유보하고 나섰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국내에서는 규제의 공룡들이 IT코리아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방통융합은 기술적 트렌드를 떠나 경쟁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 의미가 크다. 융합 이전에는 시장이 서로 달랐던 사업자들이 융합으로 인해 사실상 동일 시장에서 경쟁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자의 수가 증가하면 그동안 독과점적 성격이 강하다고 당연시돼 왔던 방송시장과 통신시장의 경쟁이 촉진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융합은 '유효경쟁''잠재적 경쟁' 등의 개념들을 실증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자 스티글러의 학설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이 융합서비스 도입은 당연히 환영해야 하고 규제는 풀어주는 쪽으로 가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규제당국들은 방송과 통신의 독과점적 성격을 전제로 짜 놓은 각종 사전적 규제들에 그토록 미련이 많은지 그 어느것 하나도 놓으려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규제의 정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하는 행태를 보면 새로운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 있는 사용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걸핏하면 소비자 후생이 이렇다 저렇다고들 하지만 서로 주장하는 내용들을 뜯어보면 오로지 규제기관과 사업자들의 입장만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이라든지 정보후생 등의 개념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으니 그런 규제가 설득력을 가질리 만무하다. 규제의 원칙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방송위원회나 정보통신부는 형평성이니 공정경쟁이니 하는 말들을 하는데 그 내용을 따져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자, 여기서 어떤 규제환경하에 놓여 있는 기존 사업자들이 있다고 하고 다른 영역의 사업자가 이와 경쟁되는 신규 융합서비스를 들고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당연히 두가지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하나는 신규 융합서비스에도 기존 사업자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신규 융합서비스의 등장에 맞추어 완화하는 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규제가 동등하다는 것이고,그런 측면만 따지면 형평성이 있고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너무도 크다. 기존 서비스와 신규 서비스를 불문하고 적용되는 규제의 수준이 다른 까닭이다. 규제당국이 신규서비스의 도입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기존 서비스에도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더욱이 소비자 후생이나 경제ㆍ사회적 파급효과까지 염두에 둔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규제당국들이 기존의 규제를 고집하는 바람에 통신사업자들과 방송사업자들이 신규 융합서비스를 통해 상대방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공정경쟁, 기회의 균등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대체 규제의 공룡들을 언제까지 그대로 둬야 하는지, 정부혁신은 구호에만 그치고 마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