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vs 2+4'의 갈등이 폭발하나.


28일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이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맏형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그동안 잠복해 있던 4형제 간 반목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들 4형제는 고 조중훈 회장의 유지에 따라 대한항공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메리츠화재(옛 동양화재) 등을 중심으로 계열분리를 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이 그룹 경영권과 관련된 사안이기보다는 일부 유산 배분 문제를 매개로 형제간 불화가 불거져 나온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계열분리가 마무리된 한진중공업과 메리츠화재와는 달리 이번 갈등이 한진해운 계열분리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조양호 회장과 공동보조를 맞춰온 한진해운이 거래 관계를 일부 단절했던 메리츠화재와 다시 계약을 맺을 것으로 알려져 장남과 3남 간 관계에도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4형제 갈등 속 마이웨이


그동안 깊숙하게 잠복돼 있던 한진그룹 4형제 간 갈등은 2003년 조중훈 회장의 타계 이후 조금씩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고 조 회장의 기일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는 문제가 형제 간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며 화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갔다는 게 한진그룹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런 갈등은 급기야 장남인 조양호 회장과 3남인 조수호 회장,차남인 조남호 회장과 4남 조정호 회장이 각각 음력과 양력으로 기일을 나눠 기제(忌祭)를 지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4형제 간 갈등은 계열분리 작업이 진행되면서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미 대한항공이 2003년 말 조정호 회장이 경영하는 동양화재와 약 5000만달러에 달하는 운송보험 계약을 해지하고 영국 로이드 보험회사로 거래처를 옮긴 데 이어 지난해엔 조남호 회장 소유의 한일CC 골프장에서 대한항공 광고판을 모두 철수했다.


한진해운도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와 보험 계약을 일부 해지하고 다른 국내 보험사와 신규 계약을 맺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계열분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메리츠화재의 주요 고객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4남에겐 적잖은 타격이었다.


한진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분가를 통해 계열분리를 한 다른 기업들이 암묵적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의리를 지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최근 2년간 4형제 간의 거래관계 정리는 상당히 이례적이고 냉정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4형제는 '1+3'과 '2+4'로 나뉘어 공동 보조를 취해왔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은 중국 물류시장 공동 진출을 모색 중이며 메리츠화재 강남 사옥은 한진중공업이 시공을 맡아 각각의 협력관계를 지속했다.


◆한진해운 계열분리 잠복


계열분리를 완료하고 '마이웨이'를 걷고 있는 한진중공업 및 메리츠화재와 달리 3남 조수호 회장이 경영하는 한진해운에 대한 계열분리 작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때문에 이번에 불거진 형제 간 갈등이 향후 버전(version)을 바꿔 조양호 회장과 조수호 회장 간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진해운의 주요 주주로는 조수호 회장 6.87%,대한항공 6.25%,(주)한진 0.48%,한국공항 4.01% 등이다.


(주)한진과 한국공항이 대한항공 계열사임을 감안하면 조양호 회장측이 10.74%로 한진해운의 자사주(10.46%)를 제외하면 사실상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사내에서는 대한항공과 한 지붕 아래 묶여 있더라도 실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면서 "중국 물류사업 공동 진출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같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조양호 회장은 지난달 (주)한진 창립 60주년 행사에서 "더 이상의 계열분리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한진해운은 실질적으로 분리돼 있으나 법적으로는 한 그룹의 회사이고 현 체제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한진해운에 대해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다.


한진그룹에 정통한 관계자는 "조수호 회장이 슬하에 딸만 둘인 점을 감안하면 계열분리 작업을 서두르지 않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갈등을 단순히 2남,4남과 장남 간 갈등으로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