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지난 13일 개최된 WTO의 홍콩 DDA협상은 당초 예상처럼 최대이슈인 농산물 및 서비스시장개방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농업부문 민감품목 인정 및 내년 4월 임시 WTO 각료회의에서 세부적인 관세감축률을 논의하는 계획 등을 포함한 수정합의안을 도출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 결과 한국농업계가 우려했던 급격한 시장개방에 대한 세부적 합의는 내년 이후로 연기됐으나,2007년까지 시장개방의 이행계획을 확정한 후 2008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당초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홍콩 DDA협상에서의 주요의제였던 농산물,비농산물시장접근(NAMA),서비스시장개방 등 6개 부문에서의 시장개방은 내년 4월 예정된 임시 WTO 각료회의 등을 통해 계획대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주요이슈는 농산품의 수입관세상한설정과 관세감축률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는 문제다. 이 부분은 구체적인 개방 세부원칙(modality) 결정과정에서 최대 100%의 관세상한선과 최소 60%의 관세감축률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한국농업에 미칠 파장은 지난 11월의 쌀시장 개방협상안의 국회비준결과보다 더욱 클 것이란 것은 자명하다. 이와 함께 현재 급물살을 타고 있는 동시다발적 FTA체결추이 역시 농산물시장개방의 또 다른 경로가 될 전망이다. 이와 같이 불가피하게 보이는 시장개방과정에서 소모적인 사회갈등구조를 최소화하면서 개방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다시 한번 모색해야 할 때다. WTO협상이나 FTA협상에서 우리농업의 개방수위를 최대한 낮춰 기존의 '저부가가치 단순농업'을 보호ㆍ유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농촌을 더욱 피폐하게 하는 길임을 농민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농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대책 없는 개방'이다. 즉 농업시장개방에 따른 과도기적 충격흡수 및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청사진과 행동계획(action plan) 및 사회적 합의가 없는 가운데,사회적 갈등증폭과 단기적인 수습대책급조에 따른 자원낭비라는 악순환이 또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형태의 시장개방정책은 비교우위산업의 수출 및 생산은 증가시키는 반면 비교열위산업은 시장에서 도태시키는,매우 적극적인 산업구조조정정책이다. 이러한 시장개방정책이 진정한 산업구조조정정책이 되기 위해선 비교열위산업에 고용된 노동력과 생산요소들을 신속히 비교우위산업으로 재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은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먼저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한 구체적 행동계획이 도출돼야 한다. 시장개방의 결과 비교열위산업에 고용돼 있던 생산요소들이 실업상태로 방치될 경우,자유무역을 통한 이익보다 비교열위부문의 사회적 비용이 훨씬 더 높아져 결국 사회후생이 감소하게 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농업시장개방의 후속조치로 이루어지는 정책들이 소위 '농심을 헤아리는' 일시적인 농민소득보전이나 전시행정차원의 농촌환경개선 등으로 그칠 경우 우리 농촌의 미래는 없다. 따라서 우리농업이 고부가가치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궁극적으로 비교우위업종으로 노동력을 재배치할 수 있는 업종전환 및 직업전환지원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지난 50여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항상 임기응변식 무마정책성의 농업대책에 의해 깊어진 정책불신의 골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시점이다. 또한 이러한 산업구조조정정책으로서의 시장개방정책의 근본적 전환은 단순제조업 등 여타 비교열위업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효율적 시장개방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대외협상이 아니라 대내협상이란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