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8:32
수정2006.04.03 08:34
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머나먼 대양 외딴 섬에 홀로 표류했다고 가정하자.절해고도의 로빈슨 크루소 신세도 즐거움이 있다면 무엇일까? 세금 없어 좋다." 중과세에 허리가 휜 서구인들이 즐기는 우스갯소리다.
한국은 사회복지세출이 높은 선진국들보다 아직 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낮다.
그러나 면세인구가 많아 상대적으로 적은 납세자들이 느끼는 담세율은 높다.
근래 세금종류도 늘고 조세인상률도 가파른 추세여서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일부 부동산관련 세금의 경우 소득 없는 고령자의 경우 저축 헐고 생계지출을 줄여야 할 형편이다.
지하경제가 여전히 존재하고,자영업 및 전문직은 탈세구멍이 열려 있기에 꼬박꼬박 원천과세 당하는 직장인들은 박탈감을 느낀다.
더구나 근래에는 납세의무에 충실했다는 뿌듯한 자긍심 대신 치욕과 분노를 토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직접 간접으로 납세국민이 동의하는 조세여야 저항이 없다.
'의회 동의 없는 조세는 없다'는 원칙은 14세기 영국 에드워드 3세 때 처음 세워지고 1688년 명예혁명 때 다시 다져졌다.
1773년 12월16일 모호크 인디안으로 가장한 미국인들이 보스턴항에 정박한 영국 동(東)인도회사 선박에 잠입해 차(茶)상자들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미국 독립혁명으로 이어지는 유명한 '보스턴 티 파티'사건이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1740∼80)가 가을수확에서 세금내고 남은 식량이 부족한 농민들 실상을 보고 받자 "빵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했다는 소문이 혁명의 불씨가 됐고 그녀는 단두대에 올라야 했다.
스위스의 전설적 영웅 윌리엄 텔 이야기도 세금과 직결된다. 13세기 독일왕이자 신성로마황제로 등극한 루돌프가 알프스 골짜기까지 파견한 조세징수원들이 사건의 실마리였다. 마을 광장에 세운 장대위 모자에 경례하기를 거부한 죄로 아들 머리 위에 얹힌 사과를 단발의 화살로 맞혀야 하는 비정한 시련을 겪었으나 이겨냄으로써 결국 외세추방과 독립운동을 촉발하게 됐다.
우리나라 최근사를 보아도 조세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야기한 준(準)혁명적 사례가 있다.
1979년 부마사태와 대통령 암살사건이 부가가치세 도입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반면 느긋한 낙관론이 있을 수 있다.
근래 정부의 조세정책은 가진 소수에게 중과세해서 없는 다수에게 나눠주는 방향으로 틀이 잡혀 있으니 저항은 있을 수 있으나 혁명적 사태는 있을 수 없다는 견해이다.
이것은 가진 소수가 국민경제의 성장동력인 설비 투자의 주체들인 점을 간과하고 있다.
수출호황과 내수부진의 양극화,기업의 해외이전과 고용기회 감소 등 한국경제의 이상 징후는 가진 소수에 대한 적대감을 정책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집 한 채 달랑 노후 마지막 생활밑천으로 보유한 사람들이 느끼는 느리지만 확실한 조세의 안락사(安樂死) 효과를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젊은 세대에게 부양부담을 줄이고,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수구세력의 소멸을 촉진하는 목적이라면 그렇다. 문제는 그들이 저항하고 후세들도 조만간 같은 입장이 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세금이 무거워도 세출 쓰임새가 분명하고 수긍이 간다면 납세자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적대감을 가져야 할 평양정권에 베푸는 각양각색의 정부지원에 대해 동의할 자가 납세자들 중에 많은가,비납세자 중에 많은가? 내 돈 아니라고 헤프게 쓰기는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일하며 세금 떼고 월급 받는 정상적 경제인들 위에 비정상적 경제인들이 군림하는 경제가 확대재생산 가능한가? 조세 마찰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조세 저항의 불씨는 꺼야 한다.
마찰과 저항의 차이를 알고 예방하는 것,그것이 정치경제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