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분쟁으로까지 비화된 한진그룹 '형제의 난'에서 고 조중훈 회장이 남겼다는 유언장의 진위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언장을 둘러싼 형제간의 다툼이 유산 상속을 둘러싼 의견 충돌로 이어졌고 결국 소송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2002년 11월17일 낮 12시 타계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조 전 회장이 사망 15시간 전인 16일 오후 9시께 직원들을 입원실로 불러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차남과 4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은 즉각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16일 오후 9시부터 12시까지 부친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유언장 작성을 위해 병원을 방문한 대한항공 직원은 보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결국 형제들은 각자 법정 상속분에 따라 선친의 유산을 물려받기로 합의하고 유언장의 진위에 대한 논란은 덮어뒀지만 양측은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대립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조 전 회장은 1999년부터 유산 배분에 관한 작업들을 진행했다"며 "유언장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 이루어진 계열 분리와 유산 상속은 조 전 회장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진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당시 유언장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산 상속을 두고 형제간에 별도의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김성배 한진관광 고문 명의의 정석기업 주식에 관해서도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조남호·정호 회장이 조 전 부회장과 김 고문의 주식을 자신들 앞으로 명의 이전해 달라고 요구한 데 대해 조양호 회장 측은 "조 전 부회장과 김 고문의 개인 재산이 소송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남호 회장 측의 한 관계자는 "당초 조 전 부회장과 김 고문의 주식을 넘겨주겠다고 먼저 약속한 것은 조양호 회장이었다"며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사실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이번 소송이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조양호 회장이 사태 수습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1999년부터 선대 회장이 형제간 재산 배분 문제를 얘기해 왔는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면서 "달라고 하는 주식을 주기 힘든 상황인 만큼 금전적인 방법 등을 포함해 다른 방식으로 합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 측은 오랜 숙고 끝에 소송을 제기한 만큼 법정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액면가 5000원인 정석기업 주식 6만9000주는 아무리 비싸게 평가하더라도 수십억원에서 100억원 미만에 불과하다"며 "두 분이 이 정도의 돈 때문에 소송을 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시훈·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