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의 교착상태가 길어지는 양상이다. 2006년 새해가 밝았으나 북한의 달러위조와 마약밀매 혐의, 그에 따른 대북 금융제재를 둘러싼 북미 양국간 대치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차기 북핵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가 점점 더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작년 11월 제5차 1단계 6자회담에서 `가능한 가장 빠른 시일에'(at the earlist possible date) 개최하자는 6개국의 합의를 바탕으로 2단계 회담이 1월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돼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대가 무산될 경우 6자회담의 모멘텀이 상실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현실화할 개연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기 6자회담 재개 시기와 관련, 북한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북한은 한 해의 대내외 정책 추진방향을 밝히는 1일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공동사설에서 6자회담을 포함한 핵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북한이 미국의 달러 위조 주장 등을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로 규정하고 이를 북미 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정치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침묵'은 미국의 태도 변화를 관찰한 후에 입장을 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부시 미 행정부는 불법행위는 명백히 6자회담과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달러 위조를 확신하고 갈수록 사법처리 의지를 분명하고 강하게 하고 있어 현재로선 미 행정부의 태도 변화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이러한 교착을 뚫기 위한 `묘안 찾기'에 관련국들의 외교력이 집중되고 있다. 공방 당사국인 북미간 직접 접촉 및 대화는 끊긴 것으로 보이나 의장국인 중국을 매개로 회담 재개를 위한 논의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단 우리 정부는 달러 위조 공방이 불거진 계기가 된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BDA) 사건에서 돌파구가 찾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미국과 중국의 교차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위조 달러 제조 또는 유통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해법이 찾아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북한의 달러 위조가 사실로 드러나면 엄청난 파장은 불가피하겠지만 적어도 별도의 채널을 통한 해결 절차를 밟게 돼 6자회담 프로세스와는 분리할 수 있어 `9.19 공동성명'의 이행방안 논의를 지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예컨대 BDA 예금거래 내역에 대한 마카오 당국의 조사 결과, 미 재무부의 기존 발표대로 이 은행을 통해 북한의 위조달러 유통 혐의 정도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북핵 6자회담의 교착 국면이 의외로 빠르게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 경우 북한은 불법행위가 정부 차원이 아닌 자국내 외화벌이 사업부서의 과욕으로 빚어진 것이었다며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2주전 중국 선양(瀋陽)에서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불법 금융행위들을 미측이 입증할 경우 북한 국내법에 따라 관련자 처벌을 검토할 것이라는 일본 교도통신의 구랍 30일 보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 행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북한의 달러 위조 혐의를 추적, 조사해온 미 행정부가 `제조' 입증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심증을 굳힐 만한 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확전'할 경우 교착의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는 달리 마카오 당국의 조사 결과와 그에 따른 북한의 해명을 수용하는 선에서 BDA 사건을 마무리한다면 북핵 문제의 교착상태는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고무적인 현상은 현 시점에서 북한 당국이 6자회담의 지속적 개최를 강하게 원하고 있으며 공동성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외곽매체라고 할 수 있는 재일조총련계 조선신보는 1일 평양발로 "공동성명은 낡은 대결구도가 해소된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의 미래상을 앞질러 제시하고 있다"고 그 의미를 전하고, "6자회담의 진전과 조선반도의 비핵화의 실현은 새로운 평화질서를 구축할 것"이라며 6자회담에 대한 지속적인 참여의지를 드러냈다. 조선신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2006년은 6자간의 외교가 작년보다 더 활발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과의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해 미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최근 몇개월새 미국 내의 강경기류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가 없다는 점도 긍정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한미간 공통된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전했다. 가깝게는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우리측 반기문 외교장관과 미측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간의 한미 전략대화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가능하면 전략대화 이전에 제5차 2단계 6자회담이 개최될 수 있도록 외교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현안에 비해 북핵문제가 크게 불거질 것이고 한미간 첫 전략대화의 자리가 대북 압박의 자리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기가 촉박한 점 등을 감안할 때 현재로선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정부 소식통은 "이달 중에 펼쳐질 차기 6자회담 재개 논의가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6자회담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