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보드래 < 서울대 교수 >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은 고도성장의 길을 달렸다.


옛 세계를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하면서.그 길을 따라 달린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깨지고 다쳤지만 그래도 '따뜻했던 어제'의 기억과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었다.


2006년 지금,그 두 가지 자산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젊은이들에겐 기댈 만한 과거도 바라볼 만한 미래도 없다.


왜 달리는지 모르면서 팍팍하게 몰려가야 하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2635세대의 정서적 기저는 '공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 스스로 한 번도 '공포'라고 이름 붙인 일 없을 그런 공포.이들은 홀로 태어났고 홀로 세상에 던져져야 한다.


어떤 연대도 이들을 위해 준비된 바 없다.


운 좋은 경우 부모의 재산에라도 기댈 수 있지만,운이 나쁜 경우 제 혼자 힘으로 평생을 버텨야 한다는 통 가능할 법하지 않은 악몽과 마주해야 한다.


20대 땐 취업난과 씨름하고 40대 중반만 되면 명예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21세기의 현실을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넘어가 줄 현실이 아니다.


1980년대까지 가족에 헌신하는 자식이면서 '큰형'과 '큰언니'가 가능했던 까닭은 노고가 넘치도록 보상받으리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그런 헛된 꿈이나 꾸고 있다간 추락하기 십상이다.


위태위태 발 딛고 있는 꿈에서 추락하긴 얼마나 쉬운지.노숙자와 마주칠 땐 절반쯤은 '혹시 나도…'라는 공포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추락의 공포 맞은 편에 있는 환상은 또 얼마나 화려한가.


백화점에선 100만원짜리 정장에 150만원짜리 코트를 팔고 폼 낼 때 필수품인 명품 구두며 가방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카드 덕분에 150만원짜리 월급쟁이에게도 그 환상은 너무 가까이 있다.


그렇다.


물론 헛되고 헛되다.


아쉬울 땐 속속들이 착취하지만 책임져 줄 생각은 절대 없는 게 요즘의 가족관이다.


2635는 조건 따져 결혼하는 게 왜 문제냐고 되묻고 이용할 때와 버릴 때를 철저히 계산한다.


꿈을 꾸고 싶어하지만 이미 꿈은 사라졌기에 이들은 냉정할 만큼 현실주의자다.


악몽과 환상과 현실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2635의 생은 굴러간다.


주목하시라―,이들이 우리의 미래다.


미래여,어떻게 살 것인가.


<'연애의 시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