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으로 점철된 유년 시절,국물로 양을 늘린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도시락을 챙기지 못해 친구들의 밥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점심을 해결했고,길에 떨어진 빵을 주워 먹기도 했다. 중학교 땐 가난과 병마에 신음하던 누나가 자살했고,신학생 시절 금요일 철야예배가 끝나면 낡은 구두가 닳을까봐 맨발로 산길을 넘었다. 허기복 목사(50)의 이야기다. 이처럼 뼈저린 가난의 경험이 있는 그가 1998년 4월,강원도 원주의 원주천 쌍다리 아래에서 노숙인,실직자,독거노인 등을 위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가난한 이들과 밥상을 나누며 공동체를 실현하겠다는 신학교 때부터의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밥을 나누는 이들과 하나님이 공동체의 주인이 돼야 한다며 교회 돈을 쓰지 않고 교회 밖에서 일을 벌였다. 밥그릇 몇 개로 시작해 무료 급식소 2곳,노인일터센터,고물상,무료진료소,취업지원센터,인재장학회,연탄은행,신나는은행 등을 두루 갖춘 원주 밥상공동체는 이렇게 시작됐다. 허 목사가 그 지난한 과정에 담긴 사랑과 나눔의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미디어윌)이라는 책에 담아냈다. 대책 없이 결심만 했을 때 학교급식 업체의 이사가 남는 밥을 대겠다며 첫번째 '파랑새'로 날아온 일,학교급식이 없는 방학을 '쌀 한 되 모으기 운동'으로 넘긴 일,겨울철 한데밥을 면하기 위해 밤낮없이 1000원짜리를 모금했던 일,사랑의 개미군단 1만명이 힘을 모아 공동체 건물을 마련한 일 등이 책에 담겨있다. 감동적인 순간도 많았다. 밥상공동체 건물에 불이 났을 때 통영구치소 수감자가 편지봉투에 담아서 보낸 5만원,선물로 받은 산삼이 밥을 나르는 승합차가 된 일,결혼비용을 줄여서 돈뭉치를 들고온 신혼부부,목사에게 쌀을 시주한 보살(불교 여신도),그리고 봉사 중독증에 빠진 사람들…. 허 목사는 밥상공동체의 오늘을 이런 사람들의 공으로 돌리며 자신은 단지 '행복의 전달자'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208쪽,9800원.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