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와 오만 국경에 걸쳐 있는 돌산맥을 차로 넘어 오만 땅에 접어든 지 2시간여.항구도시 소하르가 눈에 들어왔다. 오만 정부가 대규모 중화학산업단지로 육성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의 울산과 여수 같은 곳이다.


지난달 12일 찾은 소하르 현장에선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 속에도 5~6월 가동을 앞둔 정유공장 폴리프로필렌공장 담수발전소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유명재 LG상사 두바이 지사장은 "30여년 전 한국이 울산과 여수에 중화학공단을 건설하던 시절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오만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첫 번째 중화학산업단지 건설에 한국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의미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KOTRA 무스카트 무역관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소하르에서만 20여개 프로젝트의 발주가 이뤄졌고 향후 발주될 물량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11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소하르 항만 공사를 끝낸 대우건설을 필두로 GS건설(폴리프로필렌 플랜트 건설) 두산중공업(담수발전소 건설) GS칼텍스(정유공장 운영) 등 한국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하르 건설'에 참여하고 있지만 오만이라는 '사막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기업은 종합상사인 LG상사다.


1990년대 말부터 오만 플랜트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한 LG상사는 사업이 구체화되던 2002년께부터 유명재 지사장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오만의 문을 두드렸다.


유 지사장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두바이와 오만을 오가면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열정을 알린 결과가 이제야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첫 프로젝트 입찰에선 쓰디 쓴 실패도 맛봐야 했다.


소하르 정유공장 입찰에 GS건설(옛 LG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도전했지만 일본 업체(JGC)가 3억달러나 낮은 약 9억달러에 사업권을 따낸 것.도저히 이익을 낼 수 없는 가격이었다.


LG상사가 수주 전략을 180도 바꾼 것도 이때부터다.


단순히 프로젝트를 따내 건설사에 소개해 주던 방식의 '레드오션' 수주 전략에서 벗어나 직접지분투자,프로젝트 파이낸싱,생산물 직접 판매 등을 골자로 한 사업 계획을 들고 '제안입찰'에 나선 것.제안입찰이란 경쟁 없이 적정한 가격을 제시한 뒤 사업권을 따내는 전략으로 사업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오만국영석유회사(OOC) 등 오만측 파트너들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중반.LG상사는 오만측을 줄기차게 설득했고 첫 번째 결실을 보게 된다.


1억8000만달러 규모의 폴리프로필렌 플랜트 사업을 따낸 것.GS건설이 공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 플랜트에서는 올 6월부터 연간 34만t의 폴리프로필렌이 생산된다.


특히 전량을 LG상사가 판매까지 할 수 있어 별도의 이익도 얻게 될 전망이다.


한번 뚫린 소하르 플랜트 시장에서는 대어(大魚)들이 굴비 엮이 듯 쏟아져 나왔다.


LG상사는 역시 GS건설과 공동으로 약 10억달러로 예상되는 아로메틱스 플랜트와 3억달러 규모의 에틸렌디크로라이드 플랜트 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모두 경쟁 없는 제안입찰을 통해서였다.


현재 아로메틱스 플랜트 최종 계약을 앞두고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인 LG상사와 GS건설은 상반기 중 두 플랜트를 착공할 계획이다.


LG상사는 3개 플랜트 사업을 위해 설립된 합작회사에도 20∼33%씩 지분도 투자했다.


이 때문에 LG상사 석유화학 사업부는 "남의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우리가 우리 공장 물건을 판매하게 된다"는 기분에 들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질주는 소하르를 넘어 오만정부가 7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2006∼2010년)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 중인 중부 두큼의 정유 플랜트 및 복합물류 단지 건설로 이어질 전망이다.


중동지역의 관문격인 두큼지역에선 올해부터 상업용 항만,수리조선소 건설,6만명이 거주할 주거타운,담수 발전소,정유공장 등에 대한 입찰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소하르(오만)=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