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여인이 옷을 고른 뒤 황금빛 타일로 장식된 무대에 올라선다.


번쩍이는 빛깔의 커튼이 닫히고,오색 조명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려온다.


거울 앞에 서자 천장에 달린 반사경이 돌아가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여인은 어느덧 분위기에 취하고,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버린다.


프랑스 파리의 고급 부틱을 찾은 모나코 공주의 얘기가 아니다.


대학생 손미정씨(22)는 6일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가 옷을 입어보는 '피팅룸(fitting room)'에서 이처럼 공주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손씨는 "보통 피팅룸은 거울도 없고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어서 대충 옷을 입고 나오기 바빴다"며 "전신거울이 있는 멋진 공간에서 옷 매무시를 바로 한 뒤 커튼을 걷고 나오노라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고 말했다.


패션 매장의 피팅룸이 바뀌고 있다.


선택한 옷을 시험삼아 입어보는 '기능의 공간'에서 고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색깔을 찾도록 도와주는 '감성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지난해 말 새단장한 롯데백화점 본점 3층 '빈폴 레이디스'는 브랜드 컨셉트에 맞춰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피팅룸을 갖췄다.


여성 트래디셔널 캐주얼인 만큼 피팅룸도 클래식한 분위기의 벽지를 바르고,은은한 색감의 '벽 조명'을 달았다.


천장 조명보다는 빈폴 고유의 체크무늬 질감이 훨씬 잘 살아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숍매니저의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신촌점의 편집매장 'C컨셉'은 넉넉한 공간이 장점이다.


기존 피팅룸보다 두 배 이상 넓은 공간에 소파까지 놨다.


전면거울,충분한 수의 옷걸이,여러 개의 코디용 하이힐을 두루 갖췄다.


속옷을 입어보려는 사람에겐 신세계 본점이 좋다.


속옷 매장 피팅룸이 돋보이기 때문.4층 란제리존에는 바바라 비너스 와코루 등 브랜드마다 각각 다른 컨셉트로 꾸민 피팅룸이 있다.


스트리트숍의 피팅룸에서도 고급화 경향이 완연하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상가에 있는 빈폴 매장 피팅룸은 웬만한 호텔방을 뺨칠 만큼 고급스럽고,지난해 10월 문을 연 명동 닥스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바로크풍 인테리어에 삼면 거울을 비치한 신사복 피팅룸이 갖춰져 있다.


김현주 에고이스트 숍매니저는 "한때는 소비자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막고 숍매니저의 권유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 피팅룸에 거울조차 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요즘 젊은 고객들은 누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자기 만족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잘 꾸며진 피팅룸이 매출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