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디지털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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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술집 주인들은 손님들에게 하소연하곤 했다.
"제발 수저로 상 좀 두들기지 말라"고.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곤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통에 테이블이 성할 틈이 없다는 얘기였다.
삼삼오오 모이면 "안나오면 쳐들어간다"며 노래를 시키던 그 시절엔 누구나 가사를 외웠다.
라디오나 TV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보다 가사나 음정이 아리송하면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듣거나 '최신 히트가요 500선'을 구해 정확한 악보를 살펴봤다.
뭐든 애써 익힌 건 오래 기억하는 법.덕분에 40대 이상은 청춘 시절 애창하던 노래 몇 곡은 언제 어디서든 끝까지 부를 수 있다.
지금은? 젊은층 대다수는 노래방에 가지 않으면 노래를 못한다.
가사를 외우지 못하니 도리 없다.
나이든 세대도 마찬가지다.
흘러간 옛노래는 모르지만 새로 익힌 노래는 자막 없이 한 줄도 부르기 어렵다.
오죽하면 음정 박자에 상관없이 가사만 심사하는 '도전 1000곡'이란 TV프로그램이 생겼을까.
노래 가사만 못외우는 게 아니다.
전자계산기가 없으면 간단한 곱셈 나눗셈도 힘들어 하고,전 같으면 단골 음식점 전화번호까지 주르르 뀄던 이들이 식구들 휴대폰 번호도 몰라 쩔쩔 맨다.
휴대폰 주소록 탓이다.
내비게이션 덕에 어디든 쉽게 찾아가지만 혼자 물어물어 갈 때와 달리 두세 번 가고도 길을 기억하지 못한다.
디지털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과 계산능력 등이 망가지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치매'라고 부른다.
나이에 상관없고 젊은층에 더 많다는 얘기도 있다.
병은 아니지만 단순한 기억과 계산도 기기에 맡기다 보면 뇌의 운동량이 적어져 결국 뇌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와서 디지털 기기를 마다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디지털 치매에 걸려 휴대폰이 없으면 애인의 전화번호도 알 수 없게 되는 건 삭막하고 무섭다.
디지털 치매를 극복하자면 가끔은 단축키 대신 번호를 누르고 부지런히 책을 읽는 등 손가락보다 뇌가 움직이도록 힘써야 한다는 조언에 귀 기울일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