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030원을 호언장담하더니…."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980원 선이 붕괴된 9일 모 기업 재무담당 임원 A씨는 지난해 말 외환당국의 구두선(口頭禪:실행함이 없이 말로만 거창하게 떠드는 일)부터 힐난했다.


당시 외환당국 관계자는 주요 기업체 외화자금 담당 임원들을 모아놓고 "내년(2006년) 평균 환율은 달러당 1030원 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단기적으로 아무리 떨어져도 980원 이하는 절대 아니다"라고 공언하면서 수출 대금을 시장에 내놓는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A씨는 "외환당국이 지금처럼 말만 앞세우고 실제 힘(개입)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원화 값은 그대로 수직 상승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당장 나만 하더라도 윗사람들의 성화로 네고(수출외화 매각)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심리적 마지노 선으로 여겨져 오던 980원 선이 무너지자 상당수 수출기업들이 투매에 가까울 정도로 보유 달러화를 시장에 내던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업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과거처럼 시장에 강력하게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국이 달러화 공급초과 구조를 어쩔 수 없이 용인하며 방어선을 950원 선 아래로 내린다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환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면 지난해 하반기 달러당 1000원 선 안팎에 체결한 수출계약 대금이 본사에 입금되는 족족 시장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최근 환율 동향을 보며 올해 사업계획의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아직 연초이긴 하지만 달러화의 글로벌 약세에 편승한 원화값 상승(환율 하락)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어디까지냐는 것.삼성전자와 같은 우량 기업들은 비록 수익성은 악화될지 몰라도 달러당 800원대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와 LG전자가 900원 선 아래에서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부에서조차 회의적이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의 수익 마지노선은 대체로 950원 선 안팎이다.


2004,2005년 수주해 둔 물량이 달러당 1000∼1100원대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견디겠지만 세자릿수 환율이 고착화돼 버리면 내년 이후에는 채산성 확보가 어려워진다.


대기업마저 이런 상태라면 중소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분위기다.


기협중앙회 관계자는 "당국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중소 수출업계는 빈사 지경에 내몰릴 것"이라며 "950원대가 되면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중소기업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