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정책 혼선의 비용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달 말 퇴임하는 '세계 경제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경기를 진단하는 독특한 화법(rhetoric)으로 유명하다.
2002년 말 경기확장 속에서 경제가 일시적인 침체에 빠졌다는 의미로 '소프트패치(soft patch)'라는 신조어를 끄집어 냈다.
1996년 주식시장이 달아오르자 투자자들이 이성을 잃고 증시로 몰려들고 있다는 의미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표현을 써 시장을 진정시킨 사례는 지금도 회자된다.
경제상황에 걸맞은 포괄적이고도 가장 적확한 어휘들을 엄선하다 보니 '너무 은유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지극히 우회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시장은 그의 말 한마디에 크게 좌우돼 왔다.
일관되면서 신중한 메시지와 선제적인 정책 시그널을 시장에 던져온 데 대한 신뢰 때문이다.
지난 6일 서울시청 기자실.서울시는 예정에 없던 해명성 브리핑을 자청했다.
용적률 완화를 검토했던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서울시내 고층 재건축 아파트단지(3종 일반주거지역)의 기준 용적률을 지금 수준(210%)으로 계속 묶겠다는 내용이었다.
공식적으로 용적률을 완화한다고 발표한 일이 없으니 정책을 번복하는 것도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올초 서울시가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재건축 규제가 완화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작년 10월 재건축 기본계획을 만들면서 3종 일반주거지역 아파트단지 기준 용적률을 210%로 결정했다가 올초 슬그머니 핵심 정책담당자들의 발언을 통해 기준 용적률을 230%로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당연히 시장은 요동쳤다.
용적률이 높아질 경우 큰 혜택을 보는 은마아파트는 평형에 따라 단숨에 평당 2000만∼3000만원씩 뛰었다.
강남 재건축아파트발(發) 집값 불안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까지 생겨났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시와 건설교통부는 강남지역 재건축 규제를 풀지 않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서울시의 '잘못된' 메시지는 시장을 한동안 뒤흔들어 놓았다.
뿐만 아니다.
아파트 4만6000여가구가 공급될 송파신도시 조성을 놓고도 건교부와 서울시는 부닥쳤다.
장기적으로 부동산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데 양쪽 모두 이견이 없다.
다만 국민들이 두 기관의 갈등을 종합부동산세법 개정 등 '8ㆍ31 부동산정책'후속 방안이 제기능을 못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두 기관이 시장에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재테크 수단 1순위는 여전히 부동산이다.
개인 자산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절대적으로 높다.
무주택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주거비용도 연봉의 30%에 달한다고 한다.
그만큼 부동산 정책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경제가 모처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고 시중 부동자금이 금융시장으로 이동해 중소기업의 자금난도 해갈시켜 줄 것으로 기대되는 요즘,주요 정책 당국이 엇박자를 내며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임에 다름 아니다.
국내 부동산시장이 그린스펀식의 신중한 메시지 전달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김철수 사회부 차장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