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선 < 연세대 교수·경제학 >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를 구분하라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논리와 정치논리가 결국 서로 구분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요약한다면 정치문제에는 '일인일표(一人一票)'에 의한 민주주의를 적용하고 경제문제에는 시장기구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경제문제는 정도는 다르나 모두 정치문제와 연결돼 있다. 그렇다면 정치가 잘돼야 경제가 잘될 것이다. 정치가 잘된다는 건 무슨 뜻인가?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주인은 국민이고,국민은 경제적 후생을 중시한다. 국민들은 경제적 후생을 높여줄 수 있는 정치인 혹은 정당을 선출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행위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주 갈아 치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평가 없이 오랫동안 장기집권하게 내버려 둘 수도 없다. 그러기에 만들어 낸 제도가 대통령의 임기제도다. 민주주의란 투철한 애국심이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그 사람에게 선의의 정치를 베풀어 줄 것을 기대하는 제도가 아니다. 선출된 정치인이 열심히 일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다시 정권을 갖게끔 정치인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활용하자는 것이 우리의 정치제도이다. 또한 정당을 통해 같은 이념과 정책을 가진 무리들이 일관성 있게 정치를 이끌어 가려고 노력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우리의 정당 정치제도이다. 그런데 과거 장기독재의 쓰라린 경험을 지닌 우리는 단임제가 최고의 가치라는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7년 단임제란 제도를 만들어 냈고 그후에도 단임제에 대한 집착을 벗지 못하고 5년 단임제란 흔치 않은 제도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좋은 경제 상황에서 취임했는데 물러날 때는 경제가 바닥에 놓였으며,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대에 우리나라를 선진국에 올려놓겠다고 서두른 나머지 외환위기를 맞게 했으며,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후에 성급히 경기를 부양하려는 욕심에서 소위 카드채 문제를 만들어 후임 정권에 큰 부담을 안겨 주었다. 왜 이렇게 모두 후임자에게 나쁜 경제 상황을 넘겨 주었을까? 내가 잘하고 좋은 평가를 받아 다시 정권을 가질 수 없다면 나중에야 어찌됐든 내 임기만을 생각하면 될 것이 아닌가? 선거 때만 되면 이합집산하는 정당을 고려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대통령이 국민들의 경제적 후생을 증진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조속히 4년 중임제 개헌을 시행해야 한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4년 잘해서 좋은 평가를 받아 다시 집권하려는 욕심을 갖게 해야 한다. 정당도 지속적으로 유지해가게 하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내년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같이 끝나게 된다. 만일 올해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중임제로 개헌한다면 앞으로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를 수 있어 정치에 의한 경제의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지방선거는 대선의 중간 시기에 치르면 될 것이다. 지금의 임기제도를 지속한다면 우리는 매년 선거만 치르다 말 것이다. 우리의 정당제도가 정착되지 못하는 것도 대통령의 단임제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해 현 집권세력이 재집권하려 할 것을 우려해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 대통령에게는 소급 적용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또한 대통령 임기 이외의 조항에 관한 개정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므로 이번에는 일단 대통령 임기 개헌에 국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를 구분하라는 공허한 주장은 그만하자.대신 정치가 경제를 망치지 않게끔 정치제도를 개선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