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실시된 삼성그룹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현 사장단의 골격이 2년째 유지됐다는 점이다.


실적이 나쁘지 않았던 상황에서 안정과 결속을 중시한 포석이라는 평이다.


하후상박(下厚上薄)형 발탁시스템을 도입해 사장-부사장단 승진을 최소화하면서 전무-상무-상무보 승진은 대폭 늘린 것도 특징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의 승진 과정에 '병목'현상이 생길 여지를 남기게 됐다.


이번 인사에서는 또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 및 사위들과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들의 승진이 최소화된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삼성공화국론'의 여파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신임 사장들의 면모는


박종우 삼성전자 프린트사업부 사장은 반도체 공정개발 분야에서 10여년간 근무하다가 2001년부터 프린트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사업 경쟁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디지털 컨버전스 환경 아래서 프린터가 중심 제품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연세대 전자재료공학과를 나와 미국 퍼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은 코닝 SDS 건설 등 삼성계열사의 경영관리 부문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으며 상사부문의 구조개혁을 이끌 적임자로 지목됐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1987년 이후 그룹 비서실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다.


또 이해진 사장은 기존의 삼성사회봉사단의 조직과 역할을 확대 개편해 조만간 새롭게 출범할 예정인 삼성자원봉사단의 초대 사령탑을 맡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충남 청양 출신으로 연세대 상학과를 나왔으며 제일모직 카드 종합화학 서울병원 등을 거쳤다.


◆부사장 승진도 줄어


지난해 26명에 달했던 부사장 승진자 수는 올해 15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사장단 교체인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부사장군(群)에 약간의 인사적체가 발생하고 있는 양상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무 승진자는 지난해보다 16명 많은 85명을 배출하고 상무 승진자도 21명 늘어난 145명에 달했다.


또 승진자들 가운데 기술직군 임원은 199명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해 삼성의 '기술중시'전략을 반영했다.


특히 기술직 신임 임원의 승진자는 99명으로 전체 신임 임원의 48%를 차지했다.


◆오너 일가와 구조본은 불이익?


이건희 회장 일가와 구조조정본부 팀장 등 삼성 내 파워그룹의 승진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이번 인사의 특징이다.


이재용 상무의 경우는 당초 전무로 승진할 것으로 점쳐졌으나 이건희 회장이 "아직 현업에서 배워야할 것이 많은 만큼 승진대상에 올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이 회장의 딸들이나 사위들도 승진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이번에 모두 제외됐다.


또 고참 부사장급으로 사장 진급 대상에 올랐던 구조조정본부의 이순동 홍보팀장과 노인식 인사팀장 등도 막판에 승진이 좌절됐다.


팀장들이 잇따라 승진할 경우 자칫 구조본이 비대해지고 권력화된다는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이학수 본부장이 해당 팀장들에게 직접 양해를 구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팀장들의 승진을 전제로 한 구조본의 조직 개편설 등도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