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세자리시대] (3) 기업들 이젠 내공 키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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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의 수익성은 환율에 얼마나 민감할까.
몇 년 전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수출 비중이 높은 그룹의 특성상 달러당 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3조6000억원 상당의 경상 이익이 줄어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삼성그룹의 지난해 경상이익이 15조원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환율 100원 하락시 수익의 20% 이상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셈이다.
하지만 이 본부장의 분석과 별개로 지난 10년 동안 삼성전자의 수익 추이와 환율을 비교해 보면 다소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한마디로 '환율 하락=수익 감소'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연평균 환율이 가장 높았던 1998년(1398원)과 두 번째로 높았던 2001년(1290원)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각각 3조1000억원과 2조2953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98년에 비해 달러당 원화 환율이 209원이나 하락한 99년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4조4815억원,2001년에 비해 39원 하락한 2002년엔 무려 7조4782억원으로 치솟았다.
최근 10년치 통계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의 수익 등락은 환율 움직임과는 거의 무관하다.
회사 관계자는 "연간 수익 추이를 분석해 보면 의외로 환율이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며 "2000년엔 반도체,2002년 휴대폰,2004년 플래시메모리처럼 연구개발(R&D)과 마케팅 역량을 쏟아부은 제품들이 차례로 대박을 터뜨렸을 때 수익의 질적인 변화가 뒤따랐다"고 설명했다.
물론 환율까지 높았더라면 삼성전자는 그 이상의 실적을 거둬들였겠지만 기본적으로 수익력의 함수는 환율 같은 외부 변수가 아니라 기업 본연의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분석 방법을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해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2004년 연평균 환율은 2002년에 비해 달러당 99원이나 떨어졌지만 제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0.82%포인트 늘어났고 2000년 환율도 1999년에 비해 하락했지만 영업이익률은 0.78%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고도화된 덕분이다.
2000년 이전까지 수출 주력 품목은 반도체 컴퓨터 가전제품 의류 등이었지만 2000년 이후 자동차와 휴대폰이 수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는 변화가 있었다.
물론 환율 하락이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업들의 이익이 줄어들면 투자와 고용 사정도 나빠진다.
문제는 개별 기업 차원에선 환율 리스크를 피해 갈 방법이 없다는 점.헤지라는 기법은 리스크를 '고정'시킬 뿐 리스크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지는 못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상무는 "환율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한 뒤 "다만 1995년 사상 초유의 엔고를 맞이해 일본 경제가 대응한 방식대로 산업 구조는 고도화하고 기업 경영은 내실을 강화하는 쪽으로 세부 전략을 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1992년 초부터 95년까지 엔화가 달러당 120엔에서 80엔 선으로 급등하면서 주식 시장이 붕괴되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등 큰 시련을 겪었으나 '엔고'를 산업 구조조정과 기업 경쟁력 향상의 계기로 삼아 내실을 다지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R&D 투자를 잘 활용하면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것"이라며 "기업들도 이제 환율과 같은 가격 변수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