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면 흰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하프연주를 배경으로 한 이들의 울음소리는 무려 15분간이나 이어진다.울음이 잦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실오라기 하는 걸치지 않은 대여섯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이들은 알몸인 채 온갖 모양의 유리컵으로 각양각색의 퍼포먼스를 펼쳐 보인다.


벨기에 출신의 전위 예술가이자 무대연출가,안무가인 얀 파브르(48)의 도발적인 신작 '눈물의 역사'의 장면이다. 지난해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초청되기도 했던 이 작품이 오는 2월10~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눈물의 역사'는 우리 몸에서 배출되는 다양한 액체,즉 땀·눈물·소변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들은 쏟아지고,흘러나오고,스며나온다. 작품의 중심인물인 '절망의 기사'는 젖은 육체를 찬미한다. 기사는 자신의 눈물과 땀,소변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눈 위로 쏟아지는 그의 노란 소변 줄기는 절망의 비명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체액의 상실과 자연적인 육체에 가해지는 '검열'을 우의적으로 보여준다. 눈물과 땀,소변을 화학적인 물질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시키고자 하는 과학 때문에 우리의 체액은 점점 흐름의 방향을 잃고 있다는 것. 파브르는 이를 통해 오늘날이 메마름의 시대,자연적인 본성이 소외되는 시대,지나친 이성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파브르는 독특한 작품세계 때문에 평단으로부터 '때로는 아름다운 감성이 돋보이고 또 때로는 이른바 일탈이라는 허영이 역겹기도 한 현대예술의 모호함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설적인 곤충학자인 앙리 파브르가 그의 증조부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곤충에 대한 지적 관심이 그의 다방면에 걸친 예술활동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1970년대 말 입장료로 받은 돈을 불태워 그 재로 '돈(money)'이라는 단어를 쓰는 파격적인 공연을 선보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80년대에는 8시간짜리 연극 '이것이 바라고 예견해왔던 연극이다'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02)580-1300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