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언청간행(言聽諫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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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은 서울 남쪽 끝자락 우면산 속에 자리하고 있어 창밖에 소나무가 울창하다.
연말에 중학교 은사께서 보내주신 '언청간행(言聽諫行)'이라는 액자를 벽에 걸어 놓으니 창밖의 소나무와 함께 운치가 더하다. 남이 말을 하면 경청하고,간절히 청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행하라는 은사님의 가르침이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나를 되새겨 보면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고집이 세다는 말을 때로 들으니 미련함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아침마다 벽에 걸린 액자 속의 '言聽諫行'이라는 글을 은사님의 가르침으로 새기며 오늘 하루는 '언청간행' 해야지 하면서도 퇴근할 때면 그러지 못함을 후회한다.
맹자(孟子)는 제나라 선(宣)왕이 "예(禮)에는 섬기던 임금이 죽으면 상복을 입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상복을 입게 되겠는가?"고 물었을 때 "신하가 간하면 행하고 말하면 들어(諫行言聽) 백성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신하가 떠나면 국경까지 인도해 주고,3년이 돼도 돌아오지 않아야 주었던 땅과 집을 회수하는,세 가지 예를 지킨다면 상복을 입게 됩니다.
지금은 신하가 간해도 행하지 않으며 말해도 듣지 않고,떠나면 찾아가서 체포하고, 떠나는 날 주었던 땅과 집을 회수해 버리니 원수가 되는데 원수를 위해 무슨 복을 입겠습니까?"(요약)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글을 창제한 성군 세종 때의 재상 허조(許稠)는 경암문집(敬庵文集)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돌이켜보면 때로 역린(逆鱗,임금의 분노)을 자초하면서까지 주상의 뜻에 반대한 적도 많았다.
모두들 가(可)하다고 하는데도 내가 고집할 때면 상께서는 "허조는 고집불통이야"라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하셨다.
하지만 상께서는 늘 끝까지 내 의견을 경청하셨고,내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한 뒤에야 그 정책을 시행하셨다.
그야말로 간하면 행하시고,말하면 들어주셨다(諫行言聽)."
성경에서 현왕으로 일컬어지는 솔로몬은 하나님에게 부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장수를 구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능히 재판하기 위한 '지혜'를 구하여 얻었는데, 솔로몬이 받은 '지혜'를 직역하면 '듣는다(hear)'는 뜻이라고 한다.
듣는다는 말은 승낙한다거나 효과가 있다는 뜻으로도 쓰이니 지혜와 통한다.
자기 말만 하면서 남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말귀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언청간행'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단순히 '언청'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간행'까지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진대 반대자의 말을 '언청간행' 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요즘 세상이 시끄러운 일들을 보면 모두 '언청간행'을 하지 않아 일어난 일들이다.
사학법 개정을 두고 여당과 야당이 서로의 말을 듣지 않다가 여당은 기습처리하고 야당이 길거리에 나선 것도 그렇고, 사학들이 간절히 반대하는데도 이를 묵살하고 입법화되자 '법률불복종운동'에 나선 것도 그렇고, 어떤 정치인이 뜻이 다른 신문을 '독극물'로 비유한 것도 그렇고,정부 고위당국자가 반대입장에 있는 신문 기고자를 'X도 모르는 XX'라고 말한 것도 그렇다.
서로 '간행'은커녕 '언청'도 않으니 누구 흠인지 입장에 따라 너무 다르다.
올해는 병술년 개의 해다.
개는 짖기를 좋아한다.
일방에서는 '짖기'만 하고 타방에서는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듣는 지혜는 찾을 수 없고 자기 말만 하는 고집만 가득하다.
올해는 입장이 달라도 '언청간행'에 노력해 나랏일이 지혜롭게 처리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도 은사께서 보내주신 액자 속의 '언청간행'에 힘쓰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