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6일 당정협의를 갖고 내년 1월부터 대기업 노조전임자에 대해 임금지급을 전면 금지하고 300인 이하 중소기업 노조에 대해선 임금지급 금지시기를 2∼3년 유예키로 합의했다. 또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를 폐지하고 공익사업 범위에 온수증기(열병합발전소 등),철도항공화물사업 등을 포함시켜 파업이 발생할 경우 즉각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저지키로 했다. 당정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노사관계법·제도선진화방안(노사로드맵)을 잠정 합의하고 다음 주 중 열리는 고위당정회의를 거쳐 2월 중 입법예고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날 당정합의 내용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는 당초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 오히려 노사분규를 부채질하는 '후진적 방안'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300인 이하 중소기업 노조에 대해선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2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중소노조들이 산별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시간을 주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노동현장은 큰 혼란에 빠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교섭력이 강화돼 노사갈등이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산별체제인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은 노사협상 때마다 집중투쟁을 벌이며 노동현장을 혼란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민주노총은 산별체제를 통해 투쟁의 깃발을 치켜들 것을 산하노조에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선거에서 당선된 현대자동차 박유기 노조위원장이 내건 슬로건도 산별노조 가입이다. 그만큼 산별노조는 한국노동현장에서 투쟁과 대립의 상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산별체제로 묶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가뜩이나 파업만능주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노동현장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80년대 극심한 노사분규를 줄이기 위해 산별교섭체제를 기업별 교섭으로 유도해 노사안정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필수공익사업에 대한 직권중재를 철폐한 것도 우리나라 노사관행을 뜯어고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권중재를 폐지한다는 것은 파업권을 보장하되 사회적으로 파장이 커진다면 그때 가서 긴급조정권을 통해 제어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국은 뉴욕시만 해도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지하철·버스의 경우 파업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노조의 파업권보다 공익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당정은 공익사업의 범위를 온수증기,항만하역,철도항공화물사업 등까지 확대하고 국민생활에 위협이 되는 파업에 대해선 즉시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약효가 먹혀들어갈지는 미지수다. 결국 노사로드맵은 한국 노동운동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고 노동계와 재계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적절히 균형을 맞춘 절충안에 불과하다. 특히 당정합의안에 대해선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어 입법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윤기설 노동전문·김인식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