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선 고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명작으로 환생시키는 경우가 있다.'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비롯됐고, '미스 사이공'은 '나비 부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알면서도 신선한 것이 이런 뮤지컬들의 매력이다. 내한 공연 중인 '렌트'도 그런 경우다. 원작이 바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찬 손''무제타의 왈츠' 등 주옥같은 아리아로 유명한 '라 보엠'은 190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렌트'는 이야기의 배경을 현대 뉴욕의 빈민가로 탈바꿈시켰다. 옛날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 우리 주변의 생생한 스토리로 변신시킨 것이 미적 상승작용을 가져와 '대박'을 기록한 셈이다. 물론 '렌트'의 성공은 '단순한 각색'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이 뮤지컬에는 원작 못지않은 예술성과 실험성이 존재한다. '라 보엠'에서 젊은 예술가를 괴롭혔던 것이 결핵과 배고픔이었다면 '렌트'에는 마약과 에이즈,대도시의 물질만능주의가 등장한다. 현대 미국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가감 없이 투영함으로써 이색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이 됐지만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절실할 수밖에 없는 무대가 됐다. 이 같은 생동감은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는 미국 공연가에서는 드물게 젊은 관객층으로부터도 선풍적인 지지를 얻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제작자의 단명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젯거리다. 음악과 연출을 맡았던 조너선 라슨은 '렌트'의 초연 전날 서른 살 나이에 '급성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뉴욕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였던 라슨의 요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작품 내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말하는 '오직 오늘뿐(No day but today)'이라는 메시지를 그대로 담아낸 대표적 사례가 됐다. 올해는 그의 사망 10주기가 되는 해여서 의미가 더욱 깊다. 특히 이번 공연은 브로드웨이 버전을 직접 꾸몄던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원작 그대로의' 무대라 반갑다. 주인공 로저역 제레미 커시니어의 연기와 가창력도 감동적이지만,떠나간 동성 애인을 목 놓아 부르는 콜린스역의 다릴 브라운이 들려주는 블루스 창법은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추운 겨울,잿빛 도시 안에 사는 현대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오는 26일까지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공연된다. (02)542-2003 원종원(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