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달 크라운제과·해태제과 회장은 최근 임원들과 신년 하례식을 겸한 저녁 회식 자리에서 묘한 '식전 행사'를 가졌다.


참석 임원 중 한 사람에게 '절대 방심하지 말자'는 요지의 롯데제과 한수길 사장 신년사를 낭독시킨 것.술 자리에서도 '라이벌 기업의 존재'를 잊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크라운제과는 지난해 해태제과 인수에 따른 '성장통'을 이겨내고 재도약의 날갯짓을 힘차게 펴고 있다.


크라운의 인수에 불만을 품은 해태제과 영업직 노조가 식품 업계 최장인 170일간의 파업과 함께 '크라운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였지만,지난해 12월15일 파업이 끝나자 증권시장에서는 일제히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그동안 크라운제과를 기업 분석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앞다퉈 기업탐방에 나서고,매수 리포트도 줄을 잇고 있다.


파업 직전과 비교했을 때 주가도 30% 가까이 올랐다.


인수 후유증을 털어낸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국내 최대 제과업체인 롯데제과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루트 세일,크로스 마케팅,'코디'영업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코디 영업'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업 주부들을 파트 타이머로 고용해 동네 슈퍼에서 흡사 '코디네이터'처럼 제과 진열 작업을 맡게 하는 것이다.


슈퍼 점주 입장에서는 진열 작업을 거들어주니 좋고,회사로서는 자사 제품을 좋은 위치에 진열시킬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롯데칠성의 위스키 영업 사원들이 일선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테이블 세팅을 도맡아 해 주면서 '스카치 블루' 판매를 늘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서울 강북지역의 일부 판매 권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며,보완 작업을 거쳐 연내 전국 400개 판매 권역에 15명씩의 '코디'주부 사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윤 회장은 "연 매출 3000억원 규모인 크라운제과만으로는 미흡했지만,해태제과를 인수해 외형이 1조원에 달하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게 된 만큼 충분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라운제과의 영업·마케팅력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제과업계에서 보편화된 '루트 세일(route sale)'의 근원지도 크라운제과다.


루트 세일은 제과 업체의 영업 직원이 차량을 끌고 일선소매 점포를 직접 돌며 제품 주문을 받고 배송도 해주는 방식이지만,1960년대만 해도 도매상이나 대리점을 통한 '딜러 세일(dealer sale)'일색이었다.


60년대말 연세대 물리학과를 중퇴하고 선친 윤태현 창업주를 도와 영업 상무를 맡고 있던 윤 회장이 도매상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어카'를 활용해 소매점 영업에 직접 나선 것이 국내 루트 세일의 효시다.


크라운제과가 외환 위기때 화의까지 몰렸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마케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자금난으로 신상품 출시가 불가능했던 크라운제과는 대만 기업과 인기 제품을 상호 교차 생산,판매해주는 '크로스 마케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대만 최대의 제과업체인 '이메이'사의 비스킷 제품인 '미인 블랙' 시리즈 6종을 크라운제과에서 수입·판매하는 대신 이메이는 크라운제과의 쿠크다스,콘칩,뽀또 등을 대만 현지에서 팔아준 것.크라운제과는 이릍 통해 연간 10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며 화의 탈피의 전기를 마련했다.


◆체력이 사력(社力)


윤 회장에게 크라운제과의 가장 큰 경쟁력을 물으면 서슴 없이 '직원들의 심력(心力)'이라고 답한다.


그가 말하는 심력은 매주말 등산을 통해 단련된 체력을 바탕으로 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는 것이다.


크라운제과의 '등산 경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단순히 윤 회장과 임직원들이 산에 올라가 화합을 다지는 낭만적인 산행이 아니다.


하루에 산 봉우리 3∼4개를 타고 오르는 일종의 '지옥 훈련'이다.


윤 회장은 화의를 당했을 때 즐기던 골프를 끊고 직원들과의 산행으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윤 회장이 지난해 1월 해태제과 인수 직후 가장 먼저 한 일도 해태제과의 4000여명 전 직원에게 18만원짜리 고급 등산화를 사 준 것이다.


◆실적 개선·배당금 약속 이행이 과제


해태제과 인수에 따른 실적 악화가 현 단계에서는 가장 큰 해결 과제다.


크라운제과는 2004년 121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흑자폭이 90% 이상 급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 파업에 따라 지난해 해태제과의 매출이 전년 대비 10.1%나 준 탓에 2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내 지분법 평가손을 입은데다,해태제과 인수 컨소시엄의 핵심 멤버인 군인공제회에 약속한 연 8%의 배당금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크라운제과가 군인공제회에 지급한 배당금은 37억원에 이른다.


해태제과의 지분 구성은 크라운제과 35.2%,군인공제회 32.9%,KB 기업구조조정조합 9.4%,KTB 4.7%,협력사 17.8% 등이다.


이 중 군인공제회에 대해서는 약정에 따라 매년 8%의 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


윤 회장은 "지난 한 해를 괴롭혔던 파업이 끝난 만큼 올해는 양사의 통합 시너지를 최대한 발휘해 양사 모두 매출을 20% 이상 끌어올리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질적인 기업 문화를 극복하는 것도 주요 현안이다.


크라운제과 직원들은 윤 회장의 카리스마에 익숙해 있지만,97년 부도 후 2001년부터 외국계 펀드 지배 하에 있던 해태제과 직원들에게는 강력한 리더십이 갈등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