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 제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인호 <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에 대한 집념과 강력한 통치력의 산물인 '경제제일주의'의 사고는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경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분배 문제 등 경제 내부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포함해 안보 통일 등 주요 국가문제는 물론 심지어 집권 과정의 정당성 결여나 정치의 비민주성에 따라 발생하는 제반 정치적 사회적 갈등까지도 경제만 잘해나가면 대체로 풀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진다.
그는 문자 그대로 국정 최고의 우선순위를 경제에 둔 것 같다.
그가 다양한 국정 현안이 충돌할 때 대체로 경제우선의 원칙에 의해 문제를 풀어간 경우를 발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당시 경제정책 수립의 핵심에 있었던 이들은 경제논리가 정치,심지어 국방 안보 등 비경제적 현안과 첨예하게 충돌할 때 그가 경제 하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 많은 사례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 경제제일주의의 사고는 필연적으로 높은 성장 목표의 제시와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한 경제 각 부문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간여,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강력한 연계 구조 등 한국적 경제운영 방식을 낳았다.
물론 이런 식의 사고는 정부에 대한 당시 국민들의 일반적 기대에 의해 지지되고 정부의 경제에 대한 역할이 수용될 수 있는 국제환경이 있어 가능했지만 정권의 태생적 한계 극복이란 차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제시한 높은 장·단기 성장목표를 대부분 초과달성하고 오늘날 한국경제의 기반을 닦음으로써 그의 경제철학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했다. 적어도 국내적으로 그의 집권이 종료하기까지,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의 전면적 변화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경제제일주의가 지금도 우리 경제의 중심 사상이 될 수 있을까? 국정 목표가 매우 복합적으로 되고 국민들의 가치나 사고체계도 다양해져 경제만 잘되면 다른 나라문제들이 덮어질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다른 국가 문제들과 관계없이 경제가 독립적으로 또 선행적으로 잘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국정의 다른 부문의 경제에 대한 적절한 역할 및 이들과 경제의 조화로운 운영이 있어야 경제가 풀려 갈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특히 예측 가능한 정치와 외교·안보 역량의 발휘는 경제의 선결요건이 되고 있다.
달라진 국제경제 환경은 정부의 경제에 대한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이후에도 경제 제일을 역설하지 않은 정부가 없다.
또 높은 성장 목표를 제시하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달성하려는 경제운용방식에 집착하지 않은 정부도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경제와 다른 국정목표가 충돌할 때 경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접근방식은 오히려 크게 후퇴하고 있다.
특히 선거와 관련될 때에는 모든 국정현안의 관리에 있어서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경우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의 국가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경제 사상은 박 대통령을 성공으로 이끈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 경제의 앞길을 어둡게 하는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적절하고도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국민들을 경계하고 설득하면서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시장 원리에 맞게 재정비하고 우리 경제의 세계 경제와의 통합이라는 중요한 과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그 기본이 돼야 한다.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바탕이 이뤄진다면 굳이 경제 제일을 강조하지 않아도 다양한 국정 목표 간 우선순위는 오히려 경제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조정돼 갈 것이다.
ihkim@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