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도시, 경계를 걷다..임충섭씨 6년만에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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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전시장 가득 가야금 산조가 흐르고 실과 물레를 이용한 대형 설치 작품이 펼쳐져 있다. 조선 여인들이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모습이 떠오른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작가 임충섭씨(65)가 6년 만에 여는 개인전 현장이다. 이 설치작품의 제목은 '탈(脫)-소실점'. 수직과 수평,긴장과 이완이라는 이분법적 개념들이 '소실점'을 기준으로 집중됐다가 흩어지는 풍경이 이채롭다.
그는 1973년 뉴욕으로 옮겨간 후 대도시와 그를 둘러싼 자연 환경에서 포착한 생각을 3차원 형태로 형상화해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의 최근작들. 평면과 조각,설치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연과 도시 문명의 접점,한국과 미국의 이질적인 두 문화의 경계를 깊숙하게 다룬다. 이는 농촌에서 태어나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된 60년대와 70년대를 겪고 거대도시 한복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인생행로와 닮았다.
작품 '발끝'은 도시와 자연의 접점을 말 발굽으로 표현한 예다.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마차를 끄는 말이나 기마경찰이 타고 다니는 말의 발굽은 자연의 또다른 형태를 상징한다. 특히 '말-지붕'은 나무와 한지로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마차를 끄는 말의 발굽과 한옥의 기와선을 접목하고 가운데를 여백으로 남겨 긴 여운을 전한다. '우물'은 마을의 소통 공간이던 고향 충북 진천의 정방형 우물가를 재현한 것. 자신의 손과 발을 천연고무로 떠내 결합시킨 '결가부좌'에서는 동양적 사색의 깊이가 느껴진다.
반투명의 고무 캐스팅으로 제작한 '귀'는 작가가 자주 드나들던 뉴욕의 영국식 바 이름을 땄다. 이 바에는 늘 한국의 민화들이 전시돼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풍겼다고 한다. 그는 그 곳에서 '눈으로 듣는 귀'의 영감을 떠올렸고 삼라만상을 수용하는 부처의 긴 귀와도 결부시켰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는 '사유'와 '관조'의 힘이 짙게 배어나온다. "그림에는 보고 그리는 그림(look and draw)과 생각하고 그리는 그림(think and draw)이 있습니다. 제 작업은 후자에 속하지요. 그것은 어떤 대상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싶은 대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2월19일까지.
(02)735-8449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