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들을 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 유병천씨(42)의 마음은 요즘 한결 가볍다.


외로움이야 그대로지만 환율이 하락한 덕에 경제적 부담이나마 많이 줄어서다.




유씨가 평소 매달 미국으로 송금해야 하는 금액은 약 5000달러.작년 가을만 해도 535만원 정도가 들었지만 요즘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해 490만원 정도만 달러로 환전하면 된다.


한 달 휘발유값이 너끈히 빠지는 셈이다.


다만 앞으로 환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게 고민거리다.


기다렸다가 좀 더 큰 혜택을 누리느냐,아니면 지금이라도 달러를 사 모아 혹시 모를 환율 반등에 대비하느냐.기러기 아빠들이 서 있는 갈림길이다.



◆기러기들의 '행복한 고민'


유씨처럼 외국에 돈을 부치는 사람에겐 환율 하락이 이만저만 반가운 뉴스가 아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에 가족을 보낸 '기러기 아빠'들도 쏠쏠한 환차익을 누리고 있다.


같은 돈을 보내더라도 미국은 최근 3개월 새 8%가량 부담이 줄었고 뉴질랜드와 호주는 각각 11%와 7% 감소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로화 지역과 영국도 3개월 전에 비해 5∼7%가량 돈이 적게 든다.


단기 해외 연수나 외국 여행 비용도 줄었다.


국가 전체의 여행 수지에는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해외 나들이를 하는 개인에겐 이득이다.


환율이 떨어지면서 외국에 거주용 부동산을 사는 길도 넓어졌다.


정부가 만성적인 달러 과잉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개인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올해 안에 완전 자유화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급락하면서 요즘처럼 달러가 쌀 때 미리 달러를 확보해야 하는지,아니면 더 싸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묻는 문의가 늘고 있다"며 "정보가 부족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환율을 섣불리 예단하는 것보다 필요한 만큼만 매달 환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원화 강세의 그림자


반면 환율이 하락하면서 달러로 월급을 받는 해외 근로자 가족은 살림살이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달러를 원화로 환전했을 때 손에 쥐는 돈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외국인 여행객을 상대하는 업소도 매출에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 내국인이 해외로 나가기는 쉬워지는 반면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서 느끼는 체감물가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해외펀드 투자자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가입한 펀드가 수익을 많이 올렸어도 환차손을 감안하면 실제 수익률은 뚝 떨어진다.


도리어 손해를 보는 경우도 흔하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