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각론없는 양극화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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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생중계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 다음날인 19일 청와대 관계자들의 표정이 모처럼 밝았다. 연설의 핵심으로,청와대가 한 달 가까이 공들인 양극화 문제에 대한 이날 조간보도가 잘됐다는 자체 평가 때문이었다. 일부 분석과 전망 기사에 아쉬움을 드러낸 참모들이 없지 않았으나 대체적인 보도 내용과 기사의 크기가 마음에 든다는 분위기였다. 이병완 비서실장 주재의 고위급 참모회의에서부터 "잘됐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한다. 홍보수석실,경제정책수석과 사회정책수석이 관여한 정책실에서도 평가는 비슷했다. 22일에는 연설 참모가 "40분 연설에 못다 담은 이야기가 많았다"며 공들인 뒷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신년연설에선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돈이 없다 -우리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비율이 낮은 편이다'는 식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상황인식만 제시했을 뿐이었다. 제일 중요한 해결책에 대해선 연설에서나,그 이후에도 계속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세금구조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겠다는 것인지,재정개혁에 나서 정부 씀씀이부터 고치겠다는 것인지,다음 세대의 돈을 가불하는 기분으로 국채를 발행하자든지,정부재산(공기업)을 대대적으로 매각하자는 것인지… 일정은 또 어떤지. 정책제시가 본업인 사람들이 가만히 있다.
그런 와중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23일 기자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양극화와 관련해 근본 해결책으로 세금올리기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세금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었고,양극화 문제가 심하니 사회적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었다"는 취지였다. 물론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제해결의 필요성이 무르익도록 논의된 뒤에야 대책이 논의되는 게 맞다"고 덧붙인 그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세금문제는 휘발성이 유난히 강하다. 봉건왕조의 절대권력이 '살았다 죽었다'한 게 세금문제 때문이었다. 당장 신년연설 이후의 주식시장을 보라. 이런 상황인데도 25일 기자회견에서도 노 대통령은 명확한 입장과 구체적인 대책없이 대책의 필요성만 강조하고 넘어갈 것인가.
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