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쌓는 자보다는 길을 놓는 경영자가 되겠다." 보수적으로 소문난 국내 제약업계에서 경영을 물려받은 창업 2·3세들이 '칭기즈칸' 스타일의 공격 경영으로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제약업계는 창업자 오너가 많고 매출 변동의 폭이 크지 않은 까닭에 그동안 '수성(守成)' 경영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다국적 제약사의 공세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경영권을 넘겨받은 최근 2·3세 경영인들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계열사 확대를 통한 외형 불리기나 글로벌 연구개발(R&D) 네트워크 구축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제약업계의 기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삼아약품 허준 회장,보령그룹 김은선 부회장,대웅제약 윤재승 사장,중외제약 이경하 사장 등이 바로 주인공들이다. 삼아약품 허준 회장(35)은 지난 4일 아버지인 허억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취임하면서 20여년간 정체됐던 회사 매출을 두 자리 이상 성장시킨다는 경영계획을 내놓았다. 그는 이를 위해 올해 연구개발 인력을 20% 이상 늘려 제네릭 의약품 신제품을 대거 출시하기로 했다. 또 해외로부터 우수한 신약 제품을 다른 제약사에 앞서 확보,국내에 공급해 매출 확대의 지렛대로 삼기로 했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의 장녀인 김은선 부회장(49)은 지난 2003년 아버지로부터 경영 실권을 넘겨받은 이후 회사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이 부진한 60여개 제품을 정리했으며 영업 분야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거래처별로 묶여 있던 영업망을 제품군별로 재편하는 대수술도 단행했다. 보령제약은 이에 따라 지난해 매출이 1579억원으로 2004년 1679억원에 비해 다소 감소했지만 올해는 구조조정의 효과가 나타나 22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영환 대웅제약 회장의 3남인 윤재승 사장(44)은 과감한 사업 확장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97년 취임 이후 온라인 의료정보 제공업체 페이지원,부동산 임대회사 대웅개발 등 7개사를 신설해 계열사 수를 기존의 2배인 14개로 늘렸다. 지난 16일에는 인공조직 및 세포치료제 개발 바이오벤처 기업인 시지바이오를 설립해 계열사에 추가했다. 또 최근에는 휴맥스,디에이피 등 타 분야 업체와 함께 경인지역 지상파방송 사업신청 컨소시엄을 구성,방송사업에도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이경하 중외제약 사장(43)은 글로벌 R&D 네트워크 수립에 힘을 쏟아왔다. 이종호 회장의 장남인 그는 2001년 취임 직후 미국 현지 생명공학연구소인 시애틀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미국의 대표적 생명공학연구소인 퍼시픽노스웨스트연구소(PNRI) 등과 협력해 암,당뇨병 등 치료 신약을 개발 중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