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환율과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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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 한 경제기관은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돌파할 시기를 2008년으로 예측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뒤에는 그 시기가 더 늦춰졌음은 물론이다. 1만달러를 재돌파한 2001년을 기점으로 계산할 때 2008년보다 몇 년은 더 길어질 것이란 건 누가 봐도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1만달러를 다시 회복한 2001년까지가 단순한 후퇴는 아니었음을 의미하는지 2008년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간 원·달 러 환율이 최소한 지난해 평균치(1024원)를 상회하지 않으면 2008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 자릿수 평균치로 내려간다면 2007년으로 앞당겨 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왠지 찜찜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3년째 잠재성장률에도 못미치는 성장을 해왔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소득향상을 피부로 못 느끼는 국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오로지 성장률에만 달린 건 아니다. 일정한 국민소득 수준에 이르기 위해선 대미 달러 대비 자국 통화가치도 중요하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룩셈부르크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과 일본이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를 달성한 1973년께에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 달러가 급락했고,이들 국가가 1만달러를 달성한 1977년 전후에도 달러는 급락했다. 한편 영국이라든지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등이 비슷하게 출발한 국가군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겪은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자국 통화가치 급락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1980년대 들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룩셈부르크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그리고 일본 등은 1987년을 전후로 2만달러를 달성했고,홍콩 싱가포르 이스라엘 아일랜드 스페인 등은 1987~1990년 기간에 1만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 대만 아르헨티나 등이 5000달러를 달성한 것은 1987~1991년 사이였다. 이 모두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가 급락한 시기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
환율은 이렇게 국민소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원화가치 상승은 미 달러화 약세뿐 아니라 무역흑자,기술적 반등 측면 등에서 지배적 흐름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자국통화 가치를 잘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국가적 능력이다. 통화가치가 상승하더라도 이를 충분히 향유하거나 감내할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국민소득이 다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경험한 대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걱정되는 점도 없지 않다. 민간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비관적인 환율 시나리오도 나오기 시작했다. "환율하락이 수출감소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일각의 분석은 잘못된 것이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세자릿수를 유지할 경우 수출 증가율은 한자릿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들이 이에 해당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환율하락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수출이 중요한 성장동력인 나라에선 결국 이것이 경쟁력인 셈이고,환율하락으로 인한 국민소득 증가의 지속성 여부도 여기에 달렸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