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전통 맹주 영국과 프랑스의 수장이 지난해 여름 유럽연합의 예산 배정을 놓고 티격태격한 적이 있다. 영국이 받으려고만 하고 베풀줄은 모른다며 괘씸하게 생각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에서 핀란드 다음으로 맛 없는 것이 영국 음식"이라고 비꼬았다.


이때 영국인들만 발끈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한 핀란드 음식 애호가는 르 피가로지를 통해 "핀란드 음식에 대한 나쁜 명성은 시정돼야 한다"며 "특히 핀란드의 훌륭한 연어와 버섯수프를 먹어보시라"고 권유했다.


주한 핀란드 대사가 독신인 관계로 디디 바르요바라 공관 차석 부인이 서울 이태원동 관저에서 핀란드의 명물 연어수프를 소개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바르요바라 여사는 세 살, 다섯 살 난 꼬마 둘을 근처 영어 유아원에 보내고 수프를 끓이고 있었다. 연어 수프는 노키아와 자일리톨의 나라 핀란드 사람들의 주식인 생선,감자,호밀빵이 모두 들어간다는 점에서 가장 핀란드적인 요리다. 세 가지 재료를 작게 썰어 피시 스톡(생선뼈 우린 물)과 휘핑 크림에 넣고 뭉근하게 끓여 먹는다. 간은 소금과 후추로만 한다.


바르요바라 여사가 접시 가득 떠 준 수프를 보니'물 반 고기 반'이다. 큼지막하게 썬 연어 살코기가 생크림을 뒤집어 쓰고 호밀빵까지 따라오니 수저 한가득에 벌써 뱃속이 따뜻하고 든든하다.


사실 연어수프와 호밀빵은 핀란드인이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통 음식이다. 1년의 절반이 겨울인 땅에서는 연한 곡물과 야채가 자라기 어렵다. 과거 핀란드인은 잡곡빵과 호밀빵을 주식으로 먹으며 민물에 가까운 인근 발틱해 연안에서 잡은 염도 낮은 생선으로 영양을 보충했다. 기존의 식단이 부실했기 때문에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수출입이 쉬워지자 피자 스파게티 스테이크 샐러드가 식탁을 '간단히' 점령해버렸다. 특히 과거에 너무도 귀했던 신선한 야채와 과일 샐러드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재료는 거의 수입된다.


바르요바라 여사는 단조로운 핀란드 식단에 대해 그래도 긍정적인 해석을 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기름기 많은 음식을 싫어하고 샐러드를 즐겨 먹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음식의 신선도를 중시한다"고 말이다. 과연 기교를 부릴줄 모르는 핀란드인의 특성은 대표 수출품인 노키아 휴대폰과 자기 그릇의 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과도 맥이 닿아있다.


핀란드가 지천에 널린 목재 외에 먹거리도 귀할만큼 자원이 부실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500만 인구의 1인당 총생산이 3만달러를 넘고 국가경쟁력이 줄곧 세계 1위라는 사실은 경이에 가깝다. 게다가 핀란드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국경을 접한 러시아 스웨덴 두 강국에 의해 번갈아 점령을 당하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였다.


홍종표 전 핀란드 대사는 "핀란드 사람들은 자기네 음식 중 뭐가 제일 맛있냐고 묻곤하는데 내가 솔직히 잡곡빵이라고 말하면 기대했던 답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전하며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세계 국가경쟁력 1위를 달성한 것은 잡곡으로 명품 수준의 빵을 만든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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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연어 수프 만들기 ]


○재료


버터 3 작은술,작은 양파 1개,감자 4개,올스파이스 열매 5개,호밀빵 약간,피시 스톡 1ℓ,생선 살코기 500g,휘핑 크림 200㎖,나도고수 5줄기,소금,후추(양파와 나도고수 줄기는 다지고 감자.생선살.호밀빵은 작게 네모 썰기 한다.)


○만들기


①큰 소스팬에 버터를 녹인 후 양파와 감자를 넣어 적신다.


②피시스톡,올스파이스,호밀빵을 넣는다.


감자가 거의 익을 때까지 약한 불로 10분간 끓인다.


④생선살,휘핑크림을 넣고 익을 때까지 끓인다.


⑤소금.후추로 간한다.


내기 전에 다진 나도고수 잎을 뿌린다.


⑥호밀빵을 토스트한 후 버터를 발라 함께 낸다.


(나도고수잎은 색과 향을 내기 위해 쓴다. 미나리나 쑥갓으로 대체 가능. 생선도 연어가 아니면 송어나 청어를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