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에는 '수수팥'이라는 간판을 내 건 떡집이 있다.

10여평 남짓한 매장에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색상의 떡으로 가지런히 채워진 선물세트들이 입 안의 침샘을 자극하는 곳이다.

뒤편에 있는 생산실에서는 손방아를 대신해 쌀 찧는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27일 설 연휴를 앞두고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 떡집의 주인은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윤은영씨(33).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재래시장 한켠에서 가래떡을 뽑아내는 전경이 흔히 '전형적인 떡집 풍경'으로 여겨지는데 젊은 '처자'가 떡집 사장이라니 조금 이색적이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떡집 '수수팥'은 윤 사장이 1억5000만원을 들여 시작한 첫 사업이다.

"음식과 관련된 사업을 해보려고 고민하던 중 젊은이들을 상대로 전통 떡을 팔아보자는 생각이 딱 떠오르는 거예요.

신세대라고 해서 모두 떡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니 이들의 고전 취향을 잘만 파고들면 요새 말로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윤 사장은 사업을 하기 전부터 요리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1999년 7개월간 이탈리아의 한 요리학교에서 오리지널 파스타와 피자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후 국내 모 기업의 홍보실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떡 요리학원을 다녔다.

그러던 중 오빠,언니와 함께 음식 콘텐츠를 제공하고 요리를 만들어 배달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음식 관련 업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동서양 음식을 나름대로 섭렵한 그가 왜 하필이면 떡에 승부를 걸기로 결정했을까.

"서양식 제과는 고급스러운 제품이 많지만 우리 전통 떡은 값도 싸고 대충 한 덩어리 집어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우리 음식이 서양에 비해 왠지 푸대접을 받는 것 같아 오기가 났어요. 그래서 제대로 상품화해 보겠다고 작심했지요."

돌이나 환갑잔치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비닐봉지나 은박지에 떡을 싸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사를 가거나 결혼해도 주변에 떡을 돌리는 풍습이 있다.

윤 사장은 이에 착안,답례떡을 명품으로 만들어 팔기로 했다.

다양한 색상과 맛을 내는 떡을 간편하고 깔끔하게 포장하면 요즘 신세대 엄마들이 더 좋아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고객의 80%가 2030 엄마들이다. 현재 수수팥의 떡 종류는 25~30가지.찹쌀에 간장으로 간을 쳐 만든 대표적인 궁중떡 '두텁떡'은 임금님 생신상에 올라가던 음식이다.

가게에는 호박씨로 녹색을 내 입힌 떡이나 찰떡자종 흑미영양찰떡 약식 구름떡 등 입 안에 군침이 돌게 만드는 떡이 깔려 있다.

선물세트 가격은 1만~16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인터넷 사이트(www.susupat.com)를 개설해 20~30대 젊은 고객층을 공략한 것도 주효했다.

전체 주문량의 80%가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며 지방까지 퀵서비스로 배달을 나간다.

윤 사장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떡을 주문하는 사람 대부분이 아침 잔치상부터 떡을 올리고 나서 이웃에 돌리기 때문에 오전 중에 배달을 끝내야 한다.

강화 간척지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쌀과 충주 공주에서 직접 공수한 밤 등 신선한 재료를 확인하는 일은 떡을 만드는 과정의 제일 처음 단계다.

이렇게 만든 떡을 한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이 하나 둘 단골로 자리잡으면서 개업 초기 월 평균 400만원 정도였던 매출이 설을 앞둔 요즘에는 하루 80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새내기 떡장사가 꼽는 떡집 명가의 요건은 무엇일까.

윤 사장은 주저 없이 '좋은 식재료와 정성'을 꼽았다.

그는 "정말 희한하게도 공을 들이는 것이 제일가는 비법"이라며 "3~4시간 스팀으로 급속하게 찌는 팥보다 비록 생산성은 떨어져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정성들여 10시간 동안 쪄낸 팥에서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강조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