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포도밭과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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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봉 < 시인 >
포도밭에 서른두 번째 설이 왔다.
나에게는 마흔두 번째 설이다.
원래 경제수명이 10년인 포도나무에서 서른두 살은 찾아보기 힘든 나이이다.
경제성이 낮아 열매도 잘 안 열리고 힘도 몇 곱절 더 든다.
사람들은 노쇠한 나무가 힘겹게 열매를 맺고 있는 밭에 와서는 "팔순 노인네 포도밭 같다" "나무를 노예처럼 착취한다"며 우리 두 부자에게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
아버지와 내가 나무를 버리지 않고 나이가 서른두 살이 되도록 돌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쎄 사람들의 말대로 어리석기 때문일까.
아버지와 나는 이런 수군거림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밭을 일구어나갔다.
포도나무 키만큼 풀들이 자라 꽃이 피고 밤나무 두릅나무 씨앗이 떨어져서 나무와 함께 경쟁하듯 커가고 벌 나비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밭.
아버지와 나는 어릴 때부터 키운 나무들을 뿌리칠 수 없었다.
나무들은 자식만큼이나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아버지와 나는 밭에서 흙냄새가 아닌 다른 냄새가 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서른두 살의 나무들과 같이 아버지도 나도 포도밭에 서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두 그루 포도나무가 된다.
나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나무를 기르고 포도를 따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세월은 흘러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포도를 재배하는 방법과 가격,거름,판로 등 아버지 고유의 영역을 하나씩 하나씩 나에게 내어주셨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 남은 가지치기는 내게 넘겨주지 않으셨다.
내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나무에 있어 그 해 첫 번째 가지치기는 1년 수확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실명에 가까운 시력을 가지고 당신 손으로 직접 가지를 치셨다.
가지에 눈이 상해도 나에게 넘겨줄 생각을 안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늘 나에게 폭탄선언을 하셨다.
"나는 이제 힘들어서 포도 농사를 못 짓겠구나.
이제 가지치기를 네가 해야겠다.
전정가위는 장식장 두 번째 서랍에 있고 가위가 말을 안 들으면 농협 구매계에 가서 새 것으로 사거라."
마취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가시기 전 아버지는 평생 일궈낸 사랑을 내게 내어주셨다.
웃으면서 기꺼이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분신까지도 넘겨주셨다.
나는 기뻤다.
"이제야 내 생각대로 밭에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있는 나무의 가지를 멋지게 자를 수 있겠구나." 철없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런 기쁨도 잠시,나는 곧 우울해졌다.
그동안 내 손에 넣고 싶었던 가지치기를 막상 아버지에게서 넘겨받으니 나약해진 아버지가 외로워 보였다.
"가지치기는 아버지가 하셔야지요" 하며 사양하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가신 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집에 오셨다.
공교롭게도 설 연휴 전이다.
온 가족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세밑이 쓸쓸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버지께서 가지치기를 세밑에 내게 맡기신 것은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라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제 아버지는 포도밭을 내게 물려주고 빈손만 남으셨다.
손의 손금이 다 닳아서 보이지 않는다.
누워 계신 아버지께 다가가 포도냄새가 나는 손을 가만히 쓸어본다.
'자기가 힘들게 만들고 기른 잎을 가을이 되어 땅에 내어줄 때 나무는 가장 행복하단다.' 아버지께서 내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일 설 아침에 나는 아버지께 처음으로 새 구두를 사서 신겨 드려야겠다.
작업화 대신 새 구두를 신고 좋은 데 많이 다니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