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년 동안 '세계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국제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그에 대한 첫 공식적인 비판서 '그린스펀 경제학의 위험한 유산'(래비 바트라 지음,황해선 옮김,돈키호테)이 출간됐다. 현재 댈러스에 있는 서던 메소디스트대 경제학 교수인 저자는 그린스펀은 미국경제에 어려움이 닥쳐올 때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빚을 늘리는 미봉책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생산성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 인상으로 수요부족이 만들어내는 경제위기가 올 때마다 부채를 늘려서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경제의 위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왔고,결국 작은 위기를 더 큰 위기로 막아왔다고 보고 있다. 한 마디로 병이 오면 체력을 키워서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엉터리 처방을 하여 급성병을 만성병으로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시장'이라는 미명 아래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쳐 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린스펀은 자신의 경제철학을 수시로 바꾸어 월 스트리트의 투자자나 정치가에게 유리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때로는 세금을 내리는 작은 정부를 지지하고,때로는 정부 재정적자 확대를 반대하고,때로는 세금을 올리는 법안을 지지하고,때로는 무역적자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말하고,때로는 무역적자 확대가 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어찌 보면 현실감각이 뛰어나지만 원칙이 없다고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 저자는 그린스펀의 이런 변덕은 모두 그의 기본 철학인 주관적 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그의 뛰어난 현실 적응력은 그가 18년이란 오랜 기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맡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마에스트로'라고 칭송한 그린스펀의 실체라는 것이다. 이제 그린스펀은 2006년 1월 말에 18년의 임기를 마치고 후임인 벤 버냉키에게 '위험한 유산'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다. 과연 버냉키가 발에는 그린스펀의 낡고 냄새나는 구두를 신고,머리에는 여러 악재에 시달리는 세계경제를 이고 제대로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버냉키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그린스펀에게서 받은 열쇠로 그린스펀의 책상 서랍을 열고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아낼까? "미스터 앨런,서랍 속에 아무것도 없지 않소?" 앞으로 그린스펀의 실체에 대한 많은 논란과 비판을 예고하는 의문으로 책을 마무리한 것도 재미있다. 407쪽,1만7000원. 한상춘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