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결정해놓고 내일 발표한다며….요식행위로 공청회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당장 집어치워라."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공청회가 열린 2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 컨퍼런스룸.예상대로 농민 수백여명이 몰려들었고 이들에 의해 단상이 점거되면서 공청회는 2시간여 지연된 끝에 무산됐다. 대통령령에 따라 협상개시 전 반드시 열어야 하는 까닭에 정부가 서둘러 개최한 공청회였다. 한ㆍ미 FTA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지만 농민에게는 큰 타격이다. 농민들이 단상을 점거하며 반대를 외친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날 농민들을 더 화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공청회를 여론 수렴을 위한 진지한 토론과정으로 삼지 않고 그저 요식행위로 때우려 했던 정부의 안일한 태도 탓이었다. 공청회가 열리자 농민들은 "양국이 내일 새벽 워싱턴에서 FTA 협상 개시를 발표한다면서 뭘하려고 공청회를 하느냐"고 따졌고,진행을 맡은 외교통상부 관료는 "규정된 절차에 따라 공청회를 하고 있다"는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더욱이 승강이가 오가던 오전 11시께 "미국을 방문 중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일 오후(현지시간) 한ㆍ미 양국이 FTA 협상 개시선언을 한다고 말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격분한 한 농민은 "FTA를 안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청회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 사정도 차근차근 들어봐야 하지 않느냐"고 울부짖었다. 또 다른 농민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박사나 교수들로 토론자를 채워 놓고 각본에 맞춰 진행하는 게 제대로 된 공청회냐"고 답답해했다. 파행 끝에 공청회의 '중단'을 선언한 외교부 관료는 "공청회가 개회된 만큼 무산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더 이상 공청회는 없다는 얘기다. 사실 한ㆍ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국익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협약이라도 피해를 보는 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절차만 대충대충 때우겠다는 정부의 발상이 답답할 뿐이다. 김현석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