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장경린 '퀵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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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윤 '견공의 외출'(26일까지, 목금토 갤러리) ]
봄이 오면 제비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면
발정난 고양이를 담장위에
덤으로 얹어드리겠습니다
아기들은 산모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노을이 물들면 망둥이가 뛰노는 안면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신 이들의 혼백은
가나다순으로 잘 정돈해두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제비들을 데리러 오겠습니다
쌀쌀해지면 코감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장경린 '퀵 서비스'전문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연스러움'은 설 자리가 없다.
깊고 유장한 것은 효율을 떨어뜨리고,경쟁의 대열에서 탈락함을 의미하니까.
삶의 다채로운 맛과 멋은 이제 조종하고 통제해야 할 의무가 되고 말았다.
이런 세상에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비눗방울처럼 가볍게 만났다가 '쿨'하게 돌아서곤 하는 사람들.시인은 목적을 상실한 채 기계처럼 핑핑 돌아가는 고속의 세상을 위태롭게 바라보며 '퀵'의 끝은 어디냐고 묻고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