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블리자드사의 한 개발자는 지난 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e스포츠 강국"이라고 치켜세웠다. 다른 개발자는 "한국 PC방을 둘러보고 감명받았다"면서 "한국처럼 누구든지 게임을 즐기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했다. '스타크래프트'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로 유명한 세계적 게임업체의 개발자들이 극찬을 한 것. 바로 다음날 한국경제신문은 중국 대만 시장을 휩쓸었던 한국 온라인게임이 상위권에서 밀려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했다. 중국의 경우 2004년 말엔 1위 '미르의 전설2' 등 5위 안에 4개나 포함됐으나 올 1월엔 1~3위를 모두 내줬다. 대만은 더 심하다. 2004년 말엔 '라그나로크' 등이 1~5위를 석권했으나 지금은 모두 5위 밖으로 밀려났다. 한국 게임이 밀려난 자리는 블리자드의 WOW와 현지 업체들이 만든 게임이 차지했다. 중국과 대만은 '온라인게임 한류 세계화'를 목표로 하는 한국 업체들에는 교두보 같은 곳이다. 바로 이 교두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게임업체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재돼 있던 한계가 드러났고 마침내 복병들이 준동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젠 "한국 게임을 베끼기만 한다"고 손가락질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 게임의 한계는 '마약' 같은 아이템으로 게이머들을 중독시켜 붙들어맨다는 점이다. 게이머의 실력보다는 아이템의 능력치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는 것은 우스운 얘기다. 특정 아이템에 중독된 게이머들은 새 게임이 나와도 아이템이 아까워 종목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난해 야심작을 내놓았던 업체들은 쓴잔을 마셔야 했다. 한국 게임은 중국 대만 게이머들이 아이템에 중독되기 전에 한계를 드러냈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 취향에 맞는 게임을 쏟아내면서 외면받기 시작했고 스토리와 그래픽이 탄탄한 WOW가 등장하는 시점에 상위권을 내주고 말았다. 중국 샨다가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하고 일본 소프트뱅크가 그라비티를 인수할 때만 해도 우리는 '실력으로 안되니까 먹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샨다는 이미 중국 시장에서 최강자로 부상했고,소프트뱅크는 '온라인게임 큰손'으로 떠올랐다. 블리자드는 WOW를 성공시킴으로써 온라인게임에서도 세계 최강을 뽐낼 수 있게 됐다. 온라인게임은 한국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고 전망이 매우 밝은 분야다. 각국에서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PC게임 비디오게임 아케이드게임 등이 온라인게임을 지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온라인게임은 세계적인 e스포츠로 뜨고 있다. 전세계 게이머들이 같은 온라인게임으로 동시에 실력을 겨루는 '온라인게임 글로벌 시대'가 임박했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 대만에서 밀려난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제대로 된 게임을 내놓는다면 지금도 늦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서버 운영이나 개발 노하우에서는 앞서가고 있다. 덧붙이자면 세계 게임업계에 '큰손'으로 등장한 소프트뱅크 샨다 등에 맞서려면 대자본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광현 IT부장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