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칼 아이칸으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KT&G는 공교롭게도 가장 이상적인 지배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한국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로부터 최근 3년 연속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국내 최고 수준'의 지배구조가 결국 외국계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가장 허술한 시스템으로 판명난 셈이다. KT&G의 이 같은 아이러니는 결국 정부에 원죄가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경영권 보호 장치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주인 없는 민영화'를 실시한 정부 책임이라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KT&G 포스코 KT 국민은행 등의 보유 지분 매각시 특정 기업이나 그룹 등 산업 자본이 지배 주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분을 골고루 분산 매각했다. 이 때문에 현재 민영화된 공기업의 경우 국내 주주 중 단일 지분율이 10%를 넘는 주요 주주가 하나도 없다. 5%를 넘는 경우도 KT&G의 기업은행 지분(5.85%)이 유일하다. 정부는 다만 국가 기간망을 보유한 통신사업자에 대해선 나름대로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정부는 KT 민영화 후 경영권 안정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외국인에 대해선 동일인이 5% 이상 지분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2004년 4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현재 KT에는 지분율 5% 이상인 외국계 펀드가 템플턴 캐피털 브랜디스 등 3개나 된다. 특히 지분 7.78%를 보유한 템플턴은 지분 취득 목적을 아예 '경영 참여'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이들 펀드는 2004년 4월 법 개정 이전에 지분을 취득한 것이어서 한시적으로 허용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법 따로,현실 따로'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외국계 펀드들이 연합해 KT 경영권 행사에 나설 경우 이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기업 민영화 후에도 정부의 영향력 안에 두려 했던 모호한 정책이 취약한 지배구조를 불러왔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공기업 민영화를 원칙 없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주식 투자를 서둘러 전면 개방하는 과정에서 공공성이 강한 공기업마저 외국 자본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