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기원씨(59)가 15년 만에 전작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랜덤하우스중앙)을 펴냈다. 소설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송씨는 32년 전인 1974년 신춘문예에 '회복기의 노래'라는 시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중견화가 이인씨(46)가 그린 울긋불긋한 꽃그림이 곁들여진 시집에는 밤꽃,제비꽃 등 꽃이름을 딴 44편의 시가 실려있다. 꽃에 대한 시인의 느낌은 맨 앞머리의 서시격인 '꽃이 필때'에 잘 나타나 있다. '지나온 어느 순간인들/ 꽃이 아닌 적이 있으랴./ 어리석도다 내 눈이여./ 삶의 굽이굽이,오지게/ 흐드러진 꽃들을/ 단 한번도 보지 못하고/지나쳤으니.' ('꽃이 필때' 전문) "지난 가을부터 시가 술술 써지는 거예요. 석 달가량 집중적으로 썼습니다. 젊을 때는 내가 퇴폐적이고 탐미적인 문학을 해왔던 것을 숨기려 한 적도 있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탐미적이고 퇴폐적인 것이 내 문학의 힘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시집에 성적 욕망이나 연애내용이 많은데 이는 내 자의식의 자유로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시집에서 시인이 가장 아낀다는 '복사꽃'에서 잘 느낄 수 있다.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다 말고/ 사립문을 뛰쳐나온 갓 스물 새댁,/ 아직도 뚝뚝 젖이 돋는 젖무덤을/ 말기에 넣을 새도 없이/ 뒤란 복사꽃 그늘로 스며드네./ 차마 첫정을 못 잊어 시집까지 찾아온/ 떠꺼머리 휘파람이 이제야 그치네.' ('복사꽃' 전문) 신라의 대표적인 향가이자 우리문학의 시원인 '처용가'를 보듯 농익은 남녀상열지사가 재현돼 있지만 그 욕정은 탁하지 않고 맑기만 하다. 시집 말미에 실린 김경미 시인과의 대담에서 송씨는 "나이 60이 다 돼서야 철이 들어 지난 삶을 돌아보니 못났던 삶도 다 꽃시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자신도 아프지 않고 상대도 아프지 않게 하는 사랑을 한 번 오지게 하고 싶다는 욕심도 털어놓았다. 송 시인의 시와 이 화백의 그림은 16~26일 서울 강남 교보문고 이벤트홀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순회전시될 예정이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